공자의 삶을 살아가는 철칙이라고 할 있을 것이며, 모두가 바라는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그의 사상으로서 중국 문화와 동아시아에 유교로서 끼친 영향력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후세 사람들의 평가는 좋은 부분도 나쁜 부분도 모두
공자도 패배한 임금의 뒤를 쫓아 제나라에 갔다(B.C. 517년, 공자 35세 때). 제나라 경공을 만난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안연-11)."라고 말해 주목을 받기도 한다.
제나라에서의 관직 등용에 실패한 공
인간관계 등은 사회의 모습이 변함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할지 모르지만 보편적이며 본질적인 인간관계의 모습은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오늘날 찾아볼 수는 없지만 옛날 君臣간의 禮의 모습은 지금도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로 남아 있다.
논어에 담겨져 있는 공자사상을
사상 -주자학-
조선시대 도학의 본격화하는 데 예비 작업으로 도학의 배경 사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조선시대 도학에 영향을 끼친 것은 남송의 주희로부터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주희의 성리학, 이른바 주자학은 13세기말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이후에 의리를 중요시하는 것과 실천적인 정신을 두드
공자상과 공자사상의 밝힘으로써 현재에 벌어지는 사상의 왜곡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박정희 군사 정권이 유교에서 충의 개념을 독재 정권에 대한 지지의 획득에 이용한 것을 공자사상, 즉 유교의 본질을 밝힘으로써 타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공
Ⅰ. 공자의 철학
공자의 철학은 첫째로 당시까지는 일반적으로 평민층보다 높은 계층에 속했던 조상의 후예와 명문출신의 사람을 가리키던 君子라는 말을 선과 진리와 미를 다 같이 갖춘 이상적인 인간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출생과 관계없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믿어 신분에
간추려 인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인간의 심리활동을 지 ․ 정 ․ 의 로 구분한다면 인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정적(情的) 활동에 속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공자의 교육사상가가의 교육관을 다룬 논어를 선택하여 교육중심적 교육관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논의하기로 하자.
군자는 <학덕을 쌓아가지고 올바른 정치와 현실참여로써 휴머니즘을 구현하는 엘리트>라 하겠다. 공자는 [사람이 진리를 넓게 구현시킨다. 진리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人能弘道,非道弘人)]라고 했다. 세계평화의 구현은 나라고 하는 인간을 완성하는 데서부터 기대할 수가 있다. 따라서 <논어>
정치․사회․윤리․도덕․예술 등 각 방면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러한 광범위한 지식을 어느 한 사람에게만 배울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문인 남궁경숙(南宮敬叔)과 더불어 다시 周나라로 가서 옛 의례(依例)를 연구하고 노자(老子)를 만나 예를 묻기도 했다. 이때는 공자의
1, 공자의 삶과 철학(공자의 인과 예)
공자는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태어났다.(B.C. 551년, 노양공 22년). 그의 조상은 원래 송나라의 귀족이었으나 노로 망명하였다. 공자의 아버지 공흘은 자가 숙량이었다. 그러므로 보통 숙량흘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어머니 안징재는 공자를 낳을 당시 10대의 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