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안에 있으니, 형체가 이미 같지 않으면, 어떻게 그 속의 정신을 전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과 같은 인식을 토대로 형상화된 회화관이다. 그러나 강세황은 한걸음 더 나아가 진경을 그리는 것을 초상화를 그리는 것에 비유하였다. 이지현 겸재의 진경산수화에 관한 연구 수원대 대학원
겸재정선을 들 수 있으며, 그의 진경산수화를 꼽을 수 있다.
「진경이란 진수 진경을 말하는 것으로 설문에서 보면 仙人變形而登天(선인변형이등천)이라고 하여 사람이 선인으로 변하여 하늘을 오른다는 뜻으로 되어있고 景(경)이란 日光(일광)이라고 하여 밝은 햇빛을 의미한다. 따라서 진경은 도교
겸재가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켜 나갔던 시대인 조선후기는 우리 회화사에 있어 가장 한국적 고유색을 발현했던 시대이다.
따라서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에 대한 고찰’ 이라는 명제 아래 겸재정선에 의해서 진경산수화가 기존의 틀을 머리고 어떻게 새롭게 변화되고 발전해 갔는가 하는 과정을 살
Ⅰ. 서론
산수화에는 `한`의 사상에 뿌리내린 한국인의 진리관이 깃들어 있다. 고래로 한인들은 사물의 진리를 판단함에 있어 그 근본 중심을 부이성에 둔다. 이것은 한국인의 대물관에서 오는 시방식의 특성이다. 우리가 보는 산수는 주관 쪽에서 객관적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연의 일
Ⅰ. 조선시대화가 인제 강희안
15세기 대표적인 선비화가. 자는 경우(景愚), 호는 인제, 본관은 진주(晋州).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 觀水圖)]는 명대의 원체 화풍과 절파 화풍을 수용하여 자신의 화풍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턱을 팔로 괴고 물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고사(덕이 높고 나이 많
ⅰ겸재정선(1676~1759)
-본관: 광주
-호: 겸재․난곡
-별칭: 자 원백(元伯)
-활동분야: 예술
①그는 어떤 화가 이었는가?
안견, 장승업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화가로서, 우리나라의 산천을 독자적 화법으로 그려내어 진경산수화풍을 확립시킨 동시에 진경산수화의 발달에 지대한 공로를 남긴 화
하다. 진경산수화 분야의 대가였던 정선 또한 이 시기의 화가였는데, 이병연과 정선이 막역한 사이로서 함께 창작과 예술을 논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각기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두 예술가의 교류는 아마도 그들도 모르는 사이 현대의 종합예술을 지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특별한 만남
1. 그들의 삶 엿보기
소개팅을 한다. 상대방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알았으면 한다. 내가 이렇게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었었나? 나도 모르던 나의 자아를 발견했다는 생각에 잠시 기쁘기도 하다. 주선자에게 꼬치꼬치 캐묻는다. 생긴 것은 어떤지, 집은 어딘지, 나
겸재정선, 공재 윤두서, 관아재 조영석 등 사대부화가의 주도적 역할에 주목하여 그 출현이 진경산수화와 마찬가지로 조선성리학과 조선의 문화자존의식을 배경으로 하는 것임을 밝힌 견해가 제기되었다. 최완수, 「겸재 진경산수화고」, 『간송문화』21 29 35, 1981~1988 ; 「겸재정선 진경산수화」, 범
겸재정선(1676~1759)의 소나무가 답해줬다. “그의 진경산수화를 보면 100점 중 99점은 소나무가 어김없이 등장해요.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로 불 지펴 밥 해 먹고, 소나무로 만들어진 관 속에 들어가 묻히고, 무덤 옆에 소나무를 심은 우리 조상들의 삶이 그 안에 있지요.”
그때부터 전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