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재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고려 후기에 이룩한 사살과 문학의 최고 수준을 서로 다른 방행으로 이었으며, 조선시대에 미친 영향에서는 상보적인 작용을 했다.
고려 후기 동안에 거듭된 역사의 격동은 철저하고도 과감한 개척정신을 요청했다. 그래서 사상과 문학에서 결정적인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가 시작되었다.
왕조교체기의 문학은 조선왕조의 건국사업을 담당한 쪽과 고려를 위해 충절을 지키려는 쪽으로 노선이 분열되었는데 이를 관각 혹은 관인문학, 처사 혹은 사림문학으로 이어졌다.
건국사업파에는 정도전이 절의충절파에는 길재가 대표로 활약하였다.
중세후기문학 제 2기 조선전기
1. 조선왕조 한문학의 정착
1.1. 전반적 양상
1932년에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선 변화보다 불교를 최고 이념으로 삼은 귀족을 대신해서 유학을 내세우는 사대부가 집권층으로 등장한 데서 실질적인 변화의 양상을 찾아야 한다. 사대부는 신분적 특권보다 스
I. 서 론
아동의 발달은 수시로 진행되고 있다. 성인들에 비해 훨씬 발달의 속도가 빠르므로 그 시기에 맞는 적절한 발달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아동은 연령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직 미성숙한 존재로서 혼자서 독립하여 생활하기에 부족하다. 체력은 미약하고,
길재(吉再)정도전(鄭道傳) 등을 들 수 있다. 이색정몽주길재 등은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고 유교를 숭상할 것을 주장하는 데 그쳤고, 또 신왕조에 협력하지도 않았으나 정도전하륜(河崙)권근(權近) 등의 성리학자는 불교의 폐단뿐만 아니라 교리(敎理) 자체를 논리적으로 변척(辨斥)하는 동시에 이태조를
길재에서 연원. 길재가 선산에 은거하면서 제자 양성 ▶ 김종직 때 영남 일대의 세력 형성 ▶ 기호 지방까지 확대
② 사림의 학풍: 세조의 즉위를 불의로 간주
경학 치중, 성리학 이외의 학문을 이단시.
향촌 자치 주장 도덕과 의리를 바탕으로 하는 왕도 정치 강조
③ 사림의 진출: 성종(1469∼1494)때를 전
길재, 김숙자, 김종직 등이 있다.
3)훈구파와 사림파의 성리학의 성격비교
훈구파는 성균관과 같은 관학에서 사장학(시와 문장) 중심의 공부를 한 반면, 사림파는 서원과 같은 사학에서 경학(성리철학)에 몰두하였다. 훈구파가 대지주인 반면, 사림파는 대부분 중소 지주적인 경제기반을 가지고 있
길재와 원척석의 회고가(지난 일을 회고하여 읊은 시가)로 시작되었다. 세조때 단종에 대한 시조도 많았는데 이때의 충신들을 사육신이라 부르며 성삼문, 유응부, 박팽년이 대표적이다. 성종초기에는 강호사시가가 유행했고 또한 명종때는 송순, 황진이 등의 뛰어난 작가들이 있었다. 시조문학의 대표
길재(吉再)의 학덕을 기려 그의 고향인 선산에 길재사(吉再祠)가 건립되었다. 이와 같은 사우 설립의 경향은 조선 중기 이후 서원의 발흥과 더불어 그 양과 질에 있어서 커다란 변모를 보이면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2) 사우와 서원
조선조의 서원은 선현(先賢)선사(先師)를 봉사하는 사(祠)와 사제를 교
사상으로서 새로운 학풍을 이루게 되었다. 그 대표적 인물로 이색, 정몽주, 길재, 정도전 등을 들 수 있다. 이색, 정몽주, 길재 등은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고 유교를 숭상할 것을 주장하는 데 그쳤고 신 왕조에 협력하지도 않았으나, 정도전, 하륜, 권근 등의 성리학자는 불교의 폐단뿐만 아니라 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