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는 “나는 옛 사람을 답습하지 않고 신의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세상 사람들은 두 사람이 들어간 문이 다르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같은 문으로 들어가 다른 문으로 나왔다는 것이 최자의 생각이었다. 옛사람의 문장과 뜻을 읽고 배우는 것은 같지만 이인로는 옛사람의 문장
Ⅰ. 서론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고려 의종 24년(1170) 문신에게 반기를 든 무신들에 의해 일어난 무신난으로 인해 무인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문벌 귀족의 해체, 지방의 중소지주 계층의 부상, 민중의 역량과 의식의 성장 등 고려 전기와는 다른 변혁의 양상을 보였던 시대를 살아갔던 문인 중
1) 이규보의 삶
1년 만에 복직하여 요직을 두루 역임함
→ 완전히 삭탈관직, 귀양
→ 복직, 본격적인 문필활동(대부분의 외교 문서 작성)
→ 70세, 금자광록대부 수태보문하시랑평장사 수문전태학사 감수국사 판예부사 한림원사 태자태보(隨太保門下侍郞平章事 修文殿大學士 監修國史 判禮部事 翰林
Ⅰ. 개요
한국고대사에 관한 사료는 대체로 고려중기 이후에 기록으로 남겨졌으므로 무려 500년에서 길게는 1000년 동안 전승되는 과정에서 신이한 관념적인 내용을 포함하였다. 특히 '삼국유사'는 그러한 신이한 신앙이나 행적을 주로 기록하였다. 자연 그 속에는 신이한 내용을 가진 설화가 대부분을
총 3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서 많은 부분 발췌했으며, 이규보 자작 시문에 대한 자평이 많이 실려 있다. 내용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다른 사람의 시를 평한 것이다. 을지문덕이 지은 <與隋將于仲文詩>에서부터 신라 진덕여왕의 <太平詩>, 최치원·정
奎報문학의 연구가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음을 뜻하며 본격적인 연구는 이제부터 착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申用浩, 「李奎報의 意識世界와 文學論硏究」, (『漢文學과 漢文敎育』,보고사, 2004)
3. 이규보의 생애
이규보의 생애를 언급하기 전에 먼저 그가 처해 있
李仁老)·오세재(吳世才)·임춘(林椿)·조통(趙通)·황보항(皇甫抗)·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를 가리킨다
의 풍류를 애모하여 화조월석 꽃피는 아침과 달 밝은 저녁이라는 뜻으로 봄 ·가을 등 좋은 계절을 이르는 말
에 시주로 상휴 하면서 산림에 은륜하기를 일삼는다는 표현을 하였고 국사개설서에
이규보는 임춘의 국순전을 읽고 그보다 더 나은 작품을 써 보려고 국선생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임춘이 무신란으로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면 이규보는 무신란으로 출세한 사람이어서 둘 사이에는 세상을 바로보는 시선이나 태도에서 논쟁을 벌일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이규보는 가전을 짓되
Ⅰ. 서 론
가전체 소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국순전,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받은 또 다른 가전체 소설 국선생전. 이 두 소설은 모두 술을 주제로 한 가전체 소설로 두 소설의 작가는 각각 임춘과 이규보라는 당대의 문인들이다. 두 작품 모두 고려중엽에 쓰였고 또한 술을 의인화한 소설이라는 점에
이규보-국선생전(술 의인화).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거북이 의인화). 이곡-죽부인전(竹夫人傳 대나무 의인화). 이첨-저생전(楮生傳 종이 의인화). 석식영암-정시자전(丁侍者傳 지팡이 의인화) 등이 있다.
고려 중기 이후 설화문학은 가전체의 수법에 의해서 소설에 가까운 형태를 갖추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