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허난설헌의 생애와 작가세계
허난설헌은 1563년(명종 18년)에 태어나서 1589년(선조 22년) 3월 19일, 27세로 사망했다. 난설헌이 살았던 시기는 임진왜란(1592년, 선조 25년 발발)이 일어나기 직전의 조선 중기로서 당시 조선의 정세는, 정치적으론 연산군 이후 명종에 이르는 4대 사화와 훈구, 사림(士林)세
허난설헌은 1563년 강원도 강릉에서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허엽과 그의 부인 강릉김씨 김광」철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양천, 본명은 초희이고, 자는 경번, 호는 난설헌이다. 허봉은 친오빠이며 홍길동전의 저자 교산 허균은 남동생이다. 당시 여성 중 이름과 자가 전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허난설헌에 비해 깊지 않다고 가정하였다.
그리고 원이 아바님의 작자와 그의 남편(이응태: 1556년, 명종 11년 출생)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다면 안동지방의 고성이씨 가문의 전형적 무반의 집안이며 시집살이가 아닌 처가살이를 했고, 당시 왕조실록에서도 우리나라의 전통적 혼례의 풍습은 처가살
4. 허난설헌이 처한 사회현실
․ 조선문단과 중국문단
허난설헌이 살았던 시대에는 조선에 출현한 3명의 ‘성당(盛唐)’을 대표하는 인물이 있었는데, 최경창, 백광훈, 이달이다. 그들은 세련된 화풍으로 ‘삼당시인(三唐詩人)’의 명예를 얻었던 시인들이었다. 허난설헌 역시 삼당시인의 영향
1. 들어가는 말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조선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변화를 겪게 된다. 이에 이 시기를 살았던 문인들이 남긴 문학 작품을 통해서 시대 상황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여러 문인 들이 있지만 특히 여기서는 여성 작가층을 대표할 수 있는 허난설헌과 이매창을 통해서 조선 중기 신
Ⅱ. 허난설헌의 생애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으로 조선 명종 18년(1563) 강릉 초당리에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허난설헌의 고향인 강릉 지방은 예부터 태백산맥의 정기를 받아 큰 인물이 많이 태어났다고 한다. 아우 허균도 자신이 강릉에서 태어난 것을 자
1. 허난설헌의 생애
동양 삼국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여류시인으로 평가받았던 조선 중기의 시인 허난설헌은 1563년(명종 1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허초희(許楚姬), 자는 경번(景樊)이고 난설헌(蘭雪軒)은 그의 호이다. 경번이라는 자는 난설헌이 중국에서 예부터 전해져온 여선(女仙)인
수업 중 역사스페셜 “조선 시대 판 사랑과 영혼”을 보면서 원이아바님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원이 아바님의 대등한 남녀관계를 보면서 허난설헌의 규원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역사스페셜에서는 당시의 대등한 남녀관계를 임진왜란(1592,선조25년) 이전의 전통 결혼 풍습과 여권에 대한 이야기로 평
사대부들의 삶의 시조는 현실을 도피하여 은둔생활을 하면서 선계와 선인에 대한 갈망이나 동경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들의 은둔 장소가 바로 자연이었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실의 질곡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공간으로 선경을 노래하곤 한다. 사대부들의 시조의 삶은 상상 속에서가
조선조 여류문학의 특질은 무엇인가?
이것을 구명하려면, 먼저 국문학 전반에 걸친 특질의 모색이 앞서야 할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先學들의 언급이 있었다. 李熙昇 박사는 '여백과 여운', 趙潤濟 박사는 '은근과 끈기', '애처로움과 가냘픔'에 '두어라'와 '노세'를 추가했고, 金東旭 교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