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순전(麴醇傳)'과 '공방전(孔方傳)' 이 남아 있는 문헌상 최초의 작품이다. 사물이나 동물, 식물을 의인화해서 내용, 속성, 가치를 주로 표현한 것이다. 마치 사람의 일대기(傳)처럼 표현하고, 또 중 역사책인 사마천의 〈사기〉의 열전(列傳)처럼 사신(史臣)의 평이 붙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략)
史臣)이 황희 ·최윤덕에 대해 기록한 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총재관들이 내용을 고쳐 기록한 사건이 있었고, 기주관이 사초에 기록된 재상에 대한 일을 집안에서 누설하여 문제가 된 일도 있었다. 계유정난으로 황보인과 김종서가 피살되어 정인지가 최종 감수를 담당하였으며, 1454년(단종 2)에
<국순전>
임춘(林椿)
자 기지(耆之) 호 하서(河西)
예천 임씨(醴泉林氏)의 시조강좌칠현(江左七賢)중 한 사람
유고집 『서하선생집(西河先生集)』
사신(史臣)은 이르노라.
「국씨(麴氏)는 대대로 농가(農家)에 근본을 두었건만, 성(聖)이 너그러운 덕과 해맑은 재질로써 임금의 심복이 되어 국정을
5. 향가
(1) 정의 : 중국에 대한 우리의 노래/ 향찰로 표기(文語) 된 우리말 노래(口語) - 어휘형태소:훈독, 문법형태소:음독(공주님隱)
(2) 시기 : 신라 ~ 고려전기까지 창작 향유 / 쇠퇴이유: 화랑 쇠잔, 귀족적 불교로 바뀜. 제한된 향유층. 한문학(문자문학)발달
(3) 전승 : 노랫말이 배경설화와 함께 전승
정도전의 삼봉집 中 -불교비판에 관한 저서-
정도전은 신왕조를 개창함에 있어서 가장 공이 큰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조선 개국 이후 이룬 업적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불교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와 관련된 저술로는 심문ㆍ천답 2편, 심기리 3편, 불씨잡변 20편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일련의
공방전(孔方傳)
임 춘(林椿)
전체 줄거리
수양산에 은거하다가 황제 때부터 기용된 공방의 조상 이야기가 발단을 이룬다. 방(方)의 인품은 둥글고 가운데 구멍이 네모나고 추시(趨時-時俗을 따르는 것)로 웅변을 잘 하여 역대에 출사를 잘 하였으나, 탐욕하고 절조가 적고 백성과 이익을 다투며 물가를
국순전(麴醇傳)
임춘(林椿)
국순(麴醇)의 자(字)는 자후(子厚)이다. 그 조상은 농서( 西) 사람이다. 90대조(九十代祖)인 모(牟)가 후직(后稷)을 도와 뭇 백성들을 먹여 공이 있었다. ‘시경(詩經)에,
“내게 밀과 보리를 주다."
한 것이 그것이다. 모(牟)가 처음 숨어살며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반드
국선생전(麴先生傳)
이규보 (李奎報)
본문 읽기
국성(麴聖-맑은 술)의 자(字)는 중지(中之-곤드레)이니, 주천(酒泉-춘추 전국 시대의 주나라에 있던 땅 이름, 이 곳에서 나는 물로 술을 빚으면 술맛이 좋다고 함)고을 사람이다. 어려서 서막(徐邈-중국 위나라 사람으로 지독한 애주가)에게 사랑을 받아, 막(
한 시대의 교육이념은 그 시대 교육사상가들의 활동에 영향을 주고, 교육사상가들 역시 당대의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 그 시대의 교육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흐름과 역사적 사실들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활발한 활동과 업적을 남긴 교육사상가들을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려시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