韻府群玉)》 권20과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해지고 있다.
이미 소실된 《수이전》의 일문 수편은 《대동운부군옥》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 지귀의 비련을 그린 <심화요탑>이 같은 책 종권 <탑>조에 쌍행사간의 간결한 문장으로 전해져 있다.
《삼국유사》 의해(義解) <이
韻府群玉』, 『五州衍文長箋散考』등에서 이와 관련된 기사와 몇몇 한역된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고대가요는 대부분 악곡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려속요는 『樂學軌範』, 『樂章歌詞』, 『時用鄕樂譜』 등에 수록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다 더욱
韻府群玉)> 등에 간략하게나마 보인다. 예종이 서경의 팔관회(八關會)에 참관했을 때 허수아비 둘이 관복을 갖추어 입고 말에 앉아 뜰을 뛰어다녔다. 이상히 여겨 물으니, 좌우에서 다음과 같이 그 경위를 설명하였다. 그 둘은 신승겸과 김락으로, 태조 왕건이 견훤과 싸우다가 궁지에 몰렸을 때 왕건을
韻府群玉)이라는 일종의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책에 실려 있는데, 길이가 짤막한 글이다. 그래서 원작(原作)이 그대로 실린 게 아니라 축약되어 실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대동운부군옥■■의 책 성격을 감안할 때 혹 그럴 가능성도 있다. <최치원>이나 <호원>의 경우 ■■대동운부군옥■■이 그
韻府群玉 수록)
신라 선덕여왕 때에 지귀라는 젊은이가 살았다. 그는 활리역의 사람으로, 하루는 서라벌에 나왔다가 지나가는 선덕여왕을 보고 첫 눈에 반하여 사모하게 되었다. 선덕 여왕은 진평왕의 맏딸로 성품이 인자하고 지혜로우며, 용모가 아름다워 모든 백성들로부터 칭송과 찬사를 받았다. 그
韻府群玉』, 『五東衍文長箋散考』 등에서 이와 관련된 기사와 몇몇 한역된 작품들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본고에서는 앞의 세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학자들은 속요 장르 내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성 및 다른 시가
韻府群玉)》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태평통재(大平通載)》 등에서 보인다.
설화자료의 채록은 ≪삼국사기≫ · ≪삼국유사≫ · ≪고려사≫ 등의 역사서나 ≪세종실록지리지≫ · ≪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읍지와 같은 지리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본격적인 설화집 간행은 15세기 후반부터
)》는 바로 설화의 보고(寶庫)라 일컬을 만한 것이다. 그 밖에 고려 전기에 박인량(朴仁亮)의 설화집 《수이전(殊異傳)》이 있었다고 하나 실전(失傳)되었고, 그 일문(逸文) 10편이 《삼국유사》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태평통재(大平通載)》 등에서 보인다.
1. 들어가며-꼭두각시놀음
흙이나 나무, 종이나 돌, 천, 플라스틱 혹은 다른 재로들를 응용해서 사람의 형상을 만든 것을 인형이라고 한다. 외형적으로 사람과 닮은꼴이라는 데에서 비롯한 명칭이다. 사람의 형상 외에도 동물상, 신상, 괴물상 기타 어린이들의 장난감류에 인형이라는 명칭이 두루 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