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15세기 말 이후, 점차 유미적, 퇴영적 색조를 띠면서 위세를 잃어갔고 16세기에는 산림 처사로써 자신의 은거를 자위하는 은일가사에서부터 가사문학 양식을 발전시킨 지방의 사대부(士林)들의 처사적 문학(사림문학)이 성행하게 되었다.
관각문학과 사림문학은 사회적인
문학을 평가한다면, 유가 본연의 공리적인 사회기능을 위해 직설적인 표현을 피했다. 즉 개인적 차원이 우선시되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성공보다는 실의와 갈등의 나날을 적지 않게 보냈다. 황정견에게 유교는 우국애민과 개인적 교양으로 크게 나타난다. 그에게 당시 사회인식을 나타내는 시는 별로
문학사조들이 있는데, 크게 관각문학, 처사문학, 방외인 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조선 전기 문학을 대표하며, 그 시대의 문학사의 흐름을 대변한다. 조선 전기의 문학은 사대부의 한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관각, 처사, 방외인 문학 역시 사대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문학이다. 이들 문학은
문학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정도전의 문덕곡(文德曲)과 권근의 상대별곡(霜臺別曲)을 통해서 조선 건국 초기 한문학의 문학사적 특징을 알아보고자 한다.
또, 건국 이후에 조선의 초기 한문학은 관각문학과 사림문학으로 나뉘어 발전하였다. 중앙 관료인 훈구파를 중심으로
문학>에서 조선 초기 한문학의 기본 성격을 관료적 문학과 처사적 문학, 그리고 방외인문학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에서 시작하였다. 임형택, <조선양반관료사회의 문화>. 국사편찬위원회편 『한국사』 제11권
임형택은 관료적 문학은 經國의 문장으로 불후의 盛事를 장식하는 관각문학이라 하고, 처사
마을로 돌아와 변학도의 연회장에서 변학도의 비리를 호소하며 읊은 시다 따라서 시의 흐름도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각자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 장에서는 한국한문학의이해4공통) 한시를 고체시(古體詩)와 근체시(近體詩)로 분류하고 각각의 시체(詩體)가 가지는 성격에 대하여 서술하기로 하자.
Ⅰ. 서 론
한시는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가치과 삶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시(時)라고 볼 수 있다. 그 시를 통해 시대상을 알수 있고 삶의 모습 생활상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여기에 한 시인인 曹植(조식) 의 작품을 잠시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煮豆持作羹 콩을 삶아서 죽을 만들고 녹시以
문학의 세계에서 자아를 찾으려 했다. 사대부 출신의 경우는 자기 환경을 방기하고 마침내는 사대부적 생활 질서에 균열을 일으킨 것으로 볼 수 있고, 출신이 한미한 경우는 뛰어난 재주가 있으나 출신의 문제로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자신을 방외에 적응시킨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반면, 처사형은 인
문학적 지향, 고전문학회 편, 『문학과 사회집단』, 집문당 p. 79
즉 지식인의 실천적 측면이 강조된 것이 사림이었다. 15세기 후반부터 이러한 자격을 갖춘 지식인들이 등장했으며, 이들을 묶어 사림파라 하는 것이다. 물론 당대에는 정치세력 집단으로서 사림파라는 용어는 쓰이지 않았다. 사림파나
문학이라고도 하며, 따라서 국민문학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일찍 소멸하였다.
그 형식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체로 기본형·변격형·파격형으로 나눌 수 있고, 음수율은 주로 3음절과 4음절로 되어 있다. 음보수(音步數)는 주로 3음보이며 가끔 4음보도 나타난다. 구수(句數)는 6구체가 가장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