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천과 그의 문학사상 **
1. 김남천의 생애와 활동
● 1911 - 평남 성천에서 군청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남, 본명은 효식(孝植).
● 1929 - 평양고보를 졸업. 일본 호세이 대학 재학 중 카프 가입, 카프
동경지부 발행 동인지《무산자》에 임화, 안막, 이북만 등과 함께 참여.
● 1930 - 평양고
2. 염상섭과 채만식의 초기 현실 인식
(1)염상섭
1) 지식인의 내면탐구에 의한 주관적 현실 인식 : <표본실의 청개구리>
1920년대 조선의 현실은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세기말적인 절망의 분위기가 사회 전반을 장악하였고, 일제의 문화 정책은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족쇄가 되어 작
관찰사로 부임하는 할아버지 박필균의 임지에 따라갔다가 되돌아왔는데, 한번 본 감영 사람들은 모두 어린 박지원을 신동이라 칭찬하였다. 1752년(영조 28) 16세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李亮天)에게는 ≪사기≫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으
1. 근대이전 그리스철학의 문학비평
*플라톤
<국가론>, 이데아론의 창시자
아테네의 교육에서 시인들은 교육자였다. 또한 교육을 통해 뛰어난 시인들의 작품을 읽게하고 이를 통해 덕과 교훈을 얻게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플라톤은 시인들은 실재의 모방인이데아의 모방 하는 사람들이라 말한다. 시
Ⅰ 서론
1970년대는 이른바 ‘산업화’의 시대이다. 경제의 급성장과 근대적인 산업 체제의 확립, 도시의 확대와 대중문화의 확산, 사회 구조의 변화와 생활 패턴의 다양화,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의 확대 등 새로운 한국 사회의 변모 양상이 나타났다. 정치적으로는 제3, 제4 공화국의 억압기였고, 경
1. 머리말
근대성을 갖는 한국 근대문학의 기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임화는 근대화를 서구화로 인식하며 개화기 이후를 근대문학으로 보았고, 이러한 견해는 백철과 조연현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한국 문학의 특수성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와의 단절적 인식으로 불연속
Ⅰ. 서론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고려 의종 24년(1170) 문신에게 반기를 든 무신들에 의해 일어난 무신난으로 인해 무인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문벌 귀족의 해체, 지방의 중소지주 계층의 부상, 민중의 역량과 의식의 성장 등 고려 전기와는 다른 변혁의 양상을 보였던 시대를 살아갔던 문인 중
1) 이규보의 삶
1년 만에 복직하여 요직을 두루 역임함
→ 완전히 삭탈관직, 귀양
→ 복직, 본격적인 문필활동(대부분의 외교 문서 작성)
→ 70세, 금자광록대부 수태보문하시랑평장사 수문전태학사 감수국사 판예부사 한림원사 태자태보(隨太保門下侍郞平章事 修文殿大學士 監修國史 判禮部事 翰林
관찰사,예조참판,지돈녕부사를 지낸 조부 박필균(朴弼均)에 의해 양육되었다. 성장하면서 신체가 건강하고 매우 영민하여 옛사란 선침(扇枕)과 온피(溫被) 같은 일을 흉내내기도 하였다. 15세까지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1752년 (영조 28) 16세에 전주이씨(全州李氏) 처사(處士) 이보천(李輔天)의
문학론
탈식민주의 문학론이 문학 비평계에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십여 년 전 까지만 해도 문학 용어 사전에 탈식민주의란 항목이 나오지 않았다는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탈식민주의가 문학과 문화를 논의하는 분야에서 중요한 논점으로 떠오른 것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