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일본에서 한적(漢籍)은 ‘박사가(博士家)’라고 불리는, 학문을 가업으로 삼는 귀족에 의하여 연구되었다. 그들의 연구 성과는 원문에 기호나 가나를 첨기함으로써 학문을 일본어로서 독해하는 ‘학문훈독’에 의하여 나타나고, 그 성과는 귀족사회에서 공유되어, 가령 가나로 쓰여진 『겐지 모노가타리 원씨물어(源氏物語)』 등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세에 들어서서 선승들에 의하여 선종이 도입될 때 남송 이후의 새로운 중국문화도 들어왔다. 그들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한시문을 사용하였기에, 그 자기 표현의 기반이 되는 한적이나 선종 문헌을 독해할 필요가 있었다. 박사가와 마찬가지로 한문훈독을 하였지만, 많은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문헌의 내용에 대한 강의를 하였으며, 각종 문헌을 인용하여 주석을 가하는 등, 고대와는 다른 연구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성과가...
이혜민 ( Hye Min Lee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인문과학[2014] 제100권 89~112페이지(총24페이지)
이 논문은 중세의 유명한 역사백과사전인 『역사의 거울』 라틴어 및 프랑스어 필사본의 도상 프로그램에서 나타나는 고대사의 수용 방식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중세인들의 고대사 인식은 당대의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인 특수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으로서, 역사서 필사본들의 세밀화들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중세 중기 이후 《12세기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특히 트로이 전설 등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이는 당시 새롭게 성장하고 있었던 민족적 왕정국가나 자유도시 등에서 자신들의 존재의 뿌리와 합법성을 고대사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13세기 프랑스의 역사서술에서도 프랑스인들의 기원을 트로이 전설로 거슬러 올라가곤 하였다. 『역사의 거울』 14세기 필사본에서는 도상 프로그램의 배치를 통해서 트로이 전쟁의 결과 프랑시옹과 그를 따르던 이들이 프랑스...
미하엘베철 ( Michael Wetzel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인문과학[2014] 제100권 113~128페이지(총16페이지)
오늘날 책 본체가 사라져가는 세 단계를 관찰할 수 있는데, 이 세 단계는 저물어 가는 20세기에 분자의 재생산, 위장, 가상화에서 비롯된다. Post-script-단계: 이 단계는 건식 복사술, 실제로 존재하는 책들의 끝없는 복사가 지배하는 단계이다.원하는 부분을 아무 곳이나 발췌해서 텍스트 본체의 볼륨을 파편화하고, 완결된 작품으로서의 책의 통일성을 잘라 내고, 복사를 하면 할수록 점점 색이 바래질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상황들에 접목되고, 텍스트 골라쥬의 보충적 소개를 통해 텍스트 형상의 파괴 앞에서 조차 위축되지 않는다. Pre-script-단계: 디지털화 단계 내지 책 원고를 디스켓 버전으로 전환하는 단계이다. 컴퓨터 인식 가능한 데이터 들이 인쇄되고 제본된 책들의 물질성을 즉시 사라지게 했고, 독자로 하여금 텍스트를 원하는 대로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