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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576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조선 성종계(成宗系) 종친을 통해 본 종친직(宗親職) 제수와 운영
강제훈 ( Kang Jae Hoon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9] 제51권 173~218페이지(총46페이지)
본 연구에서는 국왕의 4세대까지의 同姓親에게 제수된 宗親職의 제수와 이후의 승직 여부를 검토하였다. 종친직은 출생 신분에 따라 자동으로 제수된다는 점에서 일반 관직과 구분된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모든 종친직은 국왕이 喪服을 입는 동성 친족을 대상으로 운영되는데, 親盡되면 소멸되도록 설정되었다. 4세대에 걸쳐 유지되는 종친직은 22단계로 구성되었는데, 제수되는 초직이 다양하지만, 종친직 수여 원칙이 적용된 결과임을 확인하였다. 또한 종친직은 승진이 가능하도록 설정되었고, 실제 30% 정도의 인원이 승진하였다. 종친직은 동일 세대에서 적첩 소생에 따라 차등되었는데, 이런 점에서는 적첩을 차별하는 사회적 관습이 반영되었다. 첩 소생의 嫡妻는 종친 내 혼인에서 사실상 첩에 준하도록 규정되었다. 그러나 4세대 전체를 기준으로 할 때, 검토한 종친의 30%만이 처의...
TAG 종친, 국왕, 신분, 유교화, 경국대전, office title for royal relative, king’s relative, privilege of royal relative, early Joseon, continuation of status
건륭연간 외교 공간의 확장과 조선 사신의 교류 - 조선·청 지식 교류의 기반에 관하여 -
김창수 ( Kim Changsu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9] 제51권 219~252페이지(총34페이지)
본 연구에서는 18세기 후반 청의 외교 의례가 변화와 그것에 따른 조선 사신의 교류 양상을 분석하였다. 조선후기 한중 지식 네트워크와 관련해서, 지금까지는 주로 사신의 수행원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반면 使行의 주체인 사신 및 사신의 활동 공간에 대한 문제는 상대적으로 간과되었다. 이에 지식검열에 해당하는 북경 내 이동 제한 즉 門禁이 사신 계층에 어떻게 적용·와해되었는지를 추적하였다. 사신은 조선과 국왕을 대리하는 만큼 사신의 활동은 외교의 영역과 직결되었다. 외교와 관련해서 ‘신하는 외교를 할 수 없다’는 당시의 관념으로 인해 사신의 교류활동은 실제로 18세기 후반까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새로운 전기는 건륭제로 인해 마련되었다. 건륭제는 자신이 만든 제국의 업적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과시하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자신의 70세 생일(17...
TAG 사신, 외교, 의례, ‘인신무외교’, 교류, envoys, diplomacy, ritual, ‘Vassals not allowed to conduct diplomacy on their own’, exchange
정조의 후궁 원빈홍씨(元嬪洪氏)의 생애와 상장례 - 『숙창궁상초일기(淑昌宮喪草日記)』를 중심으로-
이미선 ( Lee Mi Seon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9] 제51권 253~290페이지(총38페이지)
본고는 元嬪洪氏의 생애와 상장례를 살펴본 사례연구로, 이글의 주된 자료는 『御製元嬪洪氏行狀』과 『淑昌宮喪草日記』 등이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관찬자료를 폭 넓게 활용하였다. 원빈홍씨(1766~1779)는 정조의 첫 번째 간택후궁이자 洪國榮의 누이동생이다. 그녀는 13살에 조선 역사상 최초로 처음부터 정1품 빈으로 선발되었다. 그녀가 후궁이 된 것은 왕실과 연혼관계에 있었던 풍산홍씨 집안의 규수였기도 했지만 조정에서 권력자로 통했던 친오빠 홍국영의 배경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정조가 손수 쓴 『어제원빈홍씨행장』을 통해 그녀가 궁궐 안에서 근신한 몸가짐과 신중한 언행으로 정조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입궁한 지 1년 만에 창덕궁 養心閤에서 腫氣로 졸서하였고, 사망한지 3개월이 되는 7월 5일에 한성 동부 溫水...
TAG 정조, 후궁, 원빈홍씨, 홍국영, 상장례, 『御製元嬪洪氏行狀』, 『淑昌宮喪草日記』, 궁원제, 孝徽宮, 仁明園, King Jeongjo, 正祖, Wonbin Hong, 元嬪洪氏, Hong Kugyeong, 洪國榮, Pungsan Hong, 豊山洪氏, royal concubine, funeral ceremon procedure, Biography of Wangbin Hong written by King Jeongjo, 御製元嬪洪氏行狀, Diary of Funeral Ceremony of Sukchanggung, 淑昌宮喪草日記, Hyohui gung, Inmyeong-won
정조 말∼순조 초 김건순(金健淳)의 행보와 신유사옥(辛酉邪獄)
임혜련 ( Lim Hyeryun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9] 제51권 291~319페이지(총29페이지)
김건순은 안동 김문 출신으로 순조 원년(1801년) 신유사옥으로 처형된 인물이다. 안동 김문은 병자호란이 발생했을 때 김상헌과 김상용의 충절을 바탕으로 의리와 학문을 갖춘 조선후기 최고의 명문가이며, 김건순은 김상헌의 봉사손이었다. 안동 김문은 19세기에는 왕실과 국혼을 통해 외척가문으로 가세를 지속하였던 노론 가문이다. 김건순은 안동 김문 가풍에서 나오는 자유롭고 다양한 분위기와 개인의 재능과 호기심, 다양한 관심이 작용하여 그는 학문으로서 서학을 하였다. 또한 그는 청년시절부터 천주교 서적을 읽고 책을 썼으며, 천주교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건순은 정조대 ‘강이천 사건’에 연루되었지만, 산림 김양행의 손자이며, 김상헌의 봉사손이라는 가문적 배경, 그리고 정조의 안동 김문에 대한 신뢰 등으로 혼자 귀양에서 제외된바 있다. 순조 ...
TAG 김건순, 신유사옥, 천주교, 안동 김문, 노론, 정순왕후, 주문모, 순교, Kim Geon Soon, Shinyu-Saok, Catholic, Andong Kim’s family, Queen Jeongsoon, King Sunjo, martyrdom
나석주의 생애와 독립운동
김성민 ( Kim Sung-min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9] 제51권 321~354페이지(총34페이지)
나석주는 1910년 약관의 나이에 동지들과 중국으로 집단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려 했으나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3ㆍ1운동 이후 1920~21년에는 황해도 일원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밀정 처단활동을 벌였다. 1924년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과 경무국장을 맡아 임시정부의 보위에 힘썼다. 그는 몸을 내던지는 직접적인 의열항쟁을 지향하였다. 이를 위해 의열단, 병인의용대, 다물단 등 의열투쟁 단체에 관계하며 투쟁방안을 모색하였다. 1925년에는 다물단과 연계하여 독자적으로 국내 의열투쟁을 추진하였다. 국내로 침투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일제 착취기관을 폭파할 계획이었으나, 운동 자금 부족으로 좌절되었다. 결국 1926년 김창숙의 자금 지원에 힘입어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지고 자결 순국하였다. 1926...
TAG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열단, 병인의용대, 다물단, 동양척식주식회사, 식산은행,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Heroic Corps, Byeong-In Volunteer Corps, Damuldan, Oriental Development Company
3·1운동의 역사적 원류와 계승
장석흥 ( Chang Seok-heung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9] 제51권 355~384페이지(총30페이지)
이 글은 3·1운동의 역사적 뿌리와 독립운동상에서 그 정신이 어떻게 계승되었는가를 규명한 것이다.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3·1운동의 중심에는 평민이 있었다. 평민이 3·1운동의 전면에 나서기까지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 이래 의병과 개화개혁운동 등 민족 혁명을 통해 축적된 민족 역량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 혈사』에서 동학농민전쟁을 ‘평민의 혁명’이라 일컬으며, 그때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천도교가 다시 나섰다고 했다. 안창호는 독립운동을 민족혁명의 차원에서 통찰하면서 그 시원을 동학농민전쟁과 개화개혁운동에서 찾았다. 계 봉우는 동학농민전쟁을 한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농민의 혁명이라 평가했다. 구 시대를 타파하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민족혁명의 동력은 19세기 말 일제의 침략을 받으며 독립운동으로 전환되어 갔...
TAG 3·1운동, 동학농민전쟁, 개화개혁운동, 평민, 대한민국 임시정부,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한국역사소설, March First movement, Donghak Peasant War, Civilization Reform Movement, common peopl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June 10th National Movement, Gwangju Student Movement, Korean historical novel
3·1운동과 정치 주체로서의 ‘여성’
소현숙 ( So Hyunsoog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9] 제51권 385~414페이지(총30페이지)
이 글에서는 정치적 주체로서 ‘여성’ 정체성이 어떻게 구축되어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3·1운동을 젠더사적 시각에서 새롭게 고찰해보고자 한다. 3·1운동에는 여학생, 교사, 전도부인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는데 이들은 한말 이래로 여성운동을 주도해온 양반 부인들을 대체하면서 운동의 주체로 부상했다. 왕조에 대한 충성심에 기반해서 활동했던 이전의 양반부인들과 달리 3·1운동에 참가한 여성들은 공화제 국가의 여성 ‘국민’으로서 자신들을 상상하였다. 3·1운동에서 여성들의 참여를 촉진시킨 기반이 되었던 것은 학교와 교회 등을 통한 여성 네트워크의 확산이었다. 이러한 ‘여성’ 네트워크에 기반한 여성단체의 조직은 ‘여성’으로서의 말하기를 촉진했고, 여성대표를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려고 시도하거나 「대한여자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등 남성에 의해 대변되는 기존의 정치질서를 ...
TAG 3·1운동, 정치주체, 여성, 젠더규범, 여성운동, 여성네트워크, 여학생, The March 1st Movement, women as political subjects, gender norm, gender politics, female students, women network, women’s movement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 제정과 모순 - 일본 의회 의사록을 중심으로 -
문상명 ( Moon Sangmyeoung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9] 제51권 415~449페이지(총35페이지)
‘한일 우정의 해’를 맞이한 2005년, 1905년 시마네현 고시 40호의 100주년을 빌미로 시마네현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 공포하였다. 이 이슈는 시마네현이 주목 받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한일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일본 의회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정부의 해결 방안을 따져 물었고, 대책과 함께 여러 방안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이후 일본 국민들의 독도에 관심을 고조시키는데도 역할을 하였다. 『일본의회 의사록』의 내용 분석을 통하여 일본 정치계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려는 목적과 과정을 살피고 그에 대한 여러 모순점들을 밝히고자 하였다.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 공포한 것은 한국을 향한 정치적 행동이라기 보다는 일본 정부의 관심을 끌기 위한 사건이다. 시마네현은 독도와 관련한 한일 간의 문제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
TAG 시마네현, 다케시마의 날, 竹島の日, 일본 의회 의사록, 시마네현 고시 40호, 독도 영유권 문제, 독도, 한일관계, Takeshima Day, Shimane Prefecture, Japanese parliamentary papers, Simane Prefecture Notice No, 40, Dokdo, Dokdo territorial issue, Korea-Japan relations
신라의 거제도 군현(郡縣) 편제 과정
김재홍 ( Kim Jae Hong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1~38페이지(총38페이지)
이 글은 신라 국가가 거제도를 군현으로 편제하는 과정을 6세기 중후반부터 8세기까지의 문헌사료와 고고학 자료를 결합하여 검토한 것이다. 한국 고대에 섬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진 지방 지배의 실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신라의 군현으로 편입이라는 시각에서 분석하였다. 신라 국가는 가야 멸망 이후 거제도로 진출하였으나, 문무왕대에야 군현으로 편제하였다. 이미 6세기 중후반부터 거제도에 신라계 횡구식석실묘를 조성하였고 7세기 전반부터 신라 산성인 둔덕기성, 옥산성지, 다대산성 등을 축조하였다. 신라가 거제도에 군현을 설치하는 과정은 대략 3단계의 시기를 거쳐 완료되었다. 1단계는 6세기 중후반으로, 해당 지역에 고분을 조성하여 재지세력을 신라 국가의 일원으로 포섭하는 과정이었다. 2단계는 7세기 전반으로 해당 지역에 산성을 쌓아 지역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지배체제를 구축하...
TAG 거제도, 신라 산성, 신라 고분, 둔덕기성, 상군, 거로현, Geoje-do, island, Shilla mountain fortress, Shilla ancient mausoleum, Dundeokgi-seong, 屯德岐城, Sang-gun, 裳郡, Georo-hyeon, 巨老縣
‘새만금 바다’, 고대 동아시아의 해양 허브 -7세기 동아시아 해전과 벽골제 문제를 중심으로-
강봉룡 ( Kang Bongyong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39~74페이지(총36페이지)
‘새만금 바다’가 ‘고대 동아시아 해양 허브’로 기능했던 바를 두 가지 측면에 서 살폈다. 첫째, ‘새만금 바다’는 7세기에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신라, 고구려, 백제, 당, 왜)이 국운을 건 혈투를 벌인 현장이다. 660년 당 소정방 함대의 미자진(군산) 상륙작전, 663년 나당연합군과 백제왜연합군 사이에 벌인 백촌강(동진강)해전, 그리고 676년 ‘동아시아 대전’을 종식시킨 기벌포(장항) 해전이 그것이다. 둘째, 새만금의 연안 해역은 호남평야 형성사의 현장이다. 4세기에 벽골제를 축조한 이후 간척사업이 1,600여 년간 지속 진행되어 오늘날의 호남평야가 형성되었다. 벽골제는 4세기 당시에 세계적인 규모의 제방이었다. 그리고 장구한 세월 간척을 통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비옥한 호남평야를 형성했다는 것은 그 자체 놀라운 일이다. 21...
TAG 새만금 바다, 미자진 상륙작전, 백촌강 해전, 기벌포 해전, 벽골제, 호남평야, Sea of Saemanguem, Mijajin landing operation, Battle of Baekchon river, Battle of Gibeolpo, Byeokgolje, Honam P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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