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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576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한국 섬과 연안의 문헌자료 데이터(DB)의 구축과 활용 전망
홍영의 ( Hong Young Eui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75~115페이지(총41페이지)
도서(섬) 연구는 역사학보다 인문지리학 또는 자연지리학 분야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또한 연구 자료를 통합적으로 확보하기보다는 개별 연구자가 확보한 문헌 자료에 주로 의지해 왔다. 그러나 개별 연구자가 확보한 문헌 자료만으로는 더 이상 연구 성과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섬 연구의 활로를 역사학을 중심으로 인문지리학과 자연지리학, 해양학 및 해양생태학과의 학제 간 교류와 융합에서 찾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0년대부터 해양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섬의 활용은 국가 차원에서도 중요한 정책의 하나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섬 관련 연구 단체가 조직되면서 역사학과 인문지리학 분야에서 섬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섬 관련 연구 성과도 많이 축적되고 있으며, ...
TAG 중세, 문헌자료, 바다, , 해산물, 유배인, Middle Ages, Literature material, Sea, Island, seafood, exile human
조선시대 절도정배지(絶島定配地)의 시기별 추이
이근호 ( Lee Geun Ho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117~148페이지(총32페이지)
본고는 도서 지역의 변화를 살피기 위한 목적에서, 절도정배지의 변화를 추적한 것이다. 절도정배를 포함한 流刑은 險地로 보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유배인의 생활이 유지될 수 있는 정도의 사회 경제적 상황이 전제되었다. 규정상으로 17세기 전반까지는 거제도와 제주, 남해, 진도 등이 절도정배지로 활용되었다. 17세기 후반 정배를 보내는 곳이 적기에 疊送하는 폐단이 있다고 하면서 대상지를 확대하기 시작하였다. 본고에서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서 확인되는 1,732건을 대상으로 17세기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누어서 절도정배지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17세기까지는 규정상으로 언급되던 지역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경기의 강화도와 교동에 정배되는 사례도 다수 확인되며, 대상은 주로 대군이나 종친, 국왕 등인데 이는 후일에 있을 지도 모를 禍亂을 미리 예방한다는 ...
TAG 絶島定配地, 流刑, 流配, 官守, 水軍鎭, 島嶼, Exile to the Island, exile, establish towns, naval base, island
조선시대 제주행 ‘관해로(官海路)’에서 출항포구의 변화
변남주 ( Byun Nam-ju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149~177페이지(총29페이지)
본 논문은 조선시기 제주 ‘관해로’와 관련하여 육지부 포구의 변화를 살펴본 것이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지리지에서 언급한 육지부 출발포구는 모두 3곳(나주, 해남 삼촌포, 강진 군영포)으로 조선시기 내내 변경이 없다. 이런 지리지의 내용을 다른 기록에 나타나는 제주 출항 예를 찾아 견주어 보았다. 그리하여 지리지의 기록과는 달리 조선 초기의 제주행 출항포구는 모두가 변경되었음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나주 출항의 경우는 1433년 무렵에 나주의 목포에서 직통으로 제주 가는 공식 관해로가 폐쇄되고, 영암 고달도(이진)로 변경되었다. 해남의 경우 고려시대에는 현산면의 남포에 이어서 조선 초인 1412년 화산면 삼촌포로 이동하였다가 다시 15세기 중반 무렵에 화산면 관동마을 남쪽에 있는 館頭浦로 이전되었다. 강진의 경우 조선 초기에는 강진읍 군영포를 이용하다가 1...
TAG 제주도, 포구, 제주해로, 나주, 해남, 강진, 영암, Jeju island, port, Jeju Sea Road, Naju, Haenam, Gangjin, Yeongam
메이지 초기 송환 표류민 사례 연구
현명철 ( Hyun Myung-cheol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179~214페이지(총36페이지)
본고는 메이지 초기 한일관계사를 재조명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메이지 초기 표류민 송환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변화하는지 실제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표류의 여러 모습을 복원함을 목적으로 한다. 2장에서는 1869년에서 1873년에 이르기까지 5년간 송환된 표류민 40건 252명의 사례를 소개하였다. 이 소개를 통해 대수대차사 서계가 거절되는 상황에서도 세견선과 표류민선이 꾸준히 입항하고 있음을 실증하고 서계 수리의 거부로 말미암아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기존의 단순한 이해가 잘못된 것임을 부각하였다. 3장에서는 다음 사항을 부각시켰다고 생각한다. 메이지 정부가 대마주의 외교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기존의 한일외교시스템을 붕괴시키는 1872년 9월까지의 표류민 송환은 전통적 관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그 이후에는 비선노인(路引-입항증명서)을 소지...
TAG 표류민, 영래차왜, 차기선, 표차사, 표민문정, 도서, 圖書, 노인, 路人, 표민순부서계, drifter, castaway, officer who return drifter, Rental vessel, Stamp, visa, Letter to repatriate, 漂民順付書契
『삼국지』 한전의 왕호(王號)와 그 실상
문창로 ( Moon Chang-rho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215~254페이지(총40페이지)
‘王’號의 등장은 건국신화와 함께 한국 고대의 국가 성립을 알려주는 주요 지표 중 하나로 꼽는다. 『三國志』 東夷傳은 여러 정치체의 지배자로서 王, 加, 主帥, 渠帥, 長帥, 大人 등의 존재를 전한다. 왕의 출현은 그것이 대두하기 이전에 渠帥(長帥), 大人 등이 이끌었던 세력 단위보다 정치적 통합과 사회발전이 앞섰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삼국지』 韓傳은 삼한 諸國을 크기에 따라 大國과 小國으로 나누고 그 지배자도 각각 臣智와 邑借 등으로 구분해 불렀다. 이는 동예의 거수들을 侯ㆍ邑君ㆍ三老 등으로 나눈 것과 맥이 닿는다. 삼한 대국의 신지는 동예에서 왕으로 봉해졌던 不耐濊侯에 비견된다. 한전의 ‘王’號로는 마한 目支國의 ‘辰王’, 辰韓의 12국이 속했던 ‘진왕’, 그리고 弁韓 12국에도 있었던 ‘왕’ 등의 사례가 확인된다. 목지국 진왕은 ...
TAG 『三國志』 韓傳, ‘王’號, 辰王, 馬韓, 辰韓, 弁辰, 『Samkukji』’s Hanjeon, the title King, JinWang, Mahan, Jinhan, Byeonjin
료녕(遼寜)~서북한지역묘제(西北韓地域墓制)와 토기(土器)의 조합관계(組合關係)및 변동(變動)을 통하여 본 고조선(古朝鮮)과 그 주변(周邊)
오강원 ( Oh Kangwon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255~294페이지(총40페이지)
후기 청동기시대~초기 철기시대 요령~서북한 지역에는 여러 물질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들 물질문화는 묘제와 토기를 중심으로 볼 때, 기원전 3세기를 기점으로 그 전후에 주변 물질문화에 커다란 변모와 변동을 불러일으킨 2개의 문화 계통이 확인되는데, 첫째는 십이대영자문화 계통이고, 둘째는 전국연문화 미안구유형이다. 십이대영자문화 계통으로는 십이대영자유형(기원전 9~7세기), 남동구유형(기원전 6~4세기), 정가와자유형(기원전 6~4세기), 고산리유형(기원전 4~3세기)이 있는데, 십이대영자유형·정가와자유형·고산리유형은 고조선의 핵심 줄기를 이루고 있고, 남동구유형은 잠시 정가와자유형 중심의 요동고조선연맹체와 병존하고 있던 요서 고조선연맹체에 해당된다. 고조선문화라 할 수 있는 십이대영자문화는 요동은 물론 서북한 등지에 커다란 변화와 변동을 발생시켰다. 이러한 영향은 십...
TAG 요령, 서북한, 십이대영자문화, 전국연문화, 묘제, 토기, 고조선문화, 주변 문화, Liaoning, Northwest Korea, Shiertaiyingzi culture, Warring States Yan culture, burials, pottery, Go-Joseon culture, periphery cultures
고조선사 체계의 재인식
박대재 ( Park Dae-jae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295~328페이지(총34페이지)
고조선사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3단계로 전개되었다고 보는 3조선설은 조선시대 이래 현재까지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근대 이후 기자조선이 부정되고, 그 대신 ‘개아지조선’, ‘韓氏朝鮮’, ‘濊貊朝鮮’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었지만, 고조선사가 3단계로 계승되었다고 보는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서는 단군과 위만, 또는 기자와 위만의 2조선을 중심으로 고조선사의 체계를 인식했다. 『帝王韻紀』에 이르러 단군의 前朝鮮과 기자의 後朝鮮에 더해 위만을 僭主이나마 추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들어가 1403년 편찬된 『東國史略』에서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3조선사 체계가 성립되고, 조선 후기 이종휘의 『東史』에서 前朝鮮-中朝鮮-後朝鮮의 시계열적인 3조선사 체계로 확립되었다. 3조선사 체계는 하나의 계통이 일관...
TAG 고조선, 3조선,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전조선, 중조선, 후조선, 발조선, Three Chosŏns, Tan, gun Chosŏn, Wiman Chosŏn, Kija Chosŏn, Former Chosŏn, Middle Chosŏn, Later Chosŏn
변진한(弁辰韓) 지역(地域)에 영향(影響)을 준 위만조선(衛滿朝鮮)의 문화(文化) -기원전(紀元前) 194년(年)부터 기원전(紀元前) 108년까지-
이양수 ( Yi Yangsu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329~362페이지(총34페이지)
변진한의 성장배경 중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위만조선이다. 위만조선은 중국 한대 연왕 노관의 부하였던 위만이 조선을 공탈하고 조선의 왕이었던 준이 한반도 남부로 남하하는 기원전 194년부터 고조선이 망하고 한사군이 설치되는 기원전 108년까지의 약 100여년의 시기에 해당한다. 위만조선의 문화는 중국 한의 문화와 고조선의 문화가 혼합되었고 그것이 한반도 남부의 변진한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금속기를 들 수 있다. 금속기에는 청동기, 철기, 금은기가 포함된다. 청동기는 이전시기부터 계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검파, 검파두식, 유문동과 등이 주목된다. 철기는 다양한 영향이 있었음이 선학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이외에 특별히 주목해볼 것으로 금은기가 있다. 현재까지 변진한에서 금은기는 영천 용전리 목관묘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TAG 위만조선, 변진한, 금속기, 청동기, 철기, 금은기, 문화교류, Wiman Joseon, Byeonjinhan, Metal, Bronze, Iron, Gold and silver, Cultural Exchange
한반도 서북부지역 철기문화의 전개과정을 통해 본 위만조선과 마한
김상민 ( Kim Sangmin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363~409페이지(총47페이지)
한반도 서북부지역 철기문화는 낙랑고분에 부장된 철기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이러한 연구 경향으로 인해 서북부지역 철기문화는 낙랑군이 설치된 이후 한나라 철기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 서북부지역에 낙랑군과 별개의 철기문화가 존재한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여기서는 한반도 서북부지역의 철기 양상을 전반적으로 검토하여 철기문화의 변천 단계를 설정하고 연대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낙랑군 설치 이전에 독자적인 철기문화가 존재하였고, 이는 낙랑군이 설치된 이후에도 한식(漢式)철기와 일정기간 공존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즉, 최초의 서북부지역 철기문화속에는 한반도만의 독자적인 철기문화가 내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위만조선의 철기문화로 보았다. 그리고 낙랑군 설치 이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청동기 주조기술을 토대로 스스로 철기를 생산하였을 가...
TAG 한반도 서북부지역, 철기문화, 기원전 2세기, 비한식 철기, 위만조 선, 낙랑군, 마한, Northwest of the Korean Peninsula, Iron cultures, B, C, 2, Wimanjoseon, non-Han-style ironware, Lelang, Nangnang, Commandery, Ma-han
신라(新羅) 사선(四仙)과 사랑(四郞)
여성구 ( Yeo Sung-gu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411~441페이지(총31페이지)
본고는 안상의 낭도설을 확정하고, 그가 낭도였다면 화랑은 누구인가를 밝히기 위해 준비한 글이다. 고려인들이 인식한 신라4선은 신라 4랑이 함께 동해안 일대를 유람한 것에 연유하거나 팔관회의 사선악부에서 비롯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고려 4선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永郞·安郞(安詳)·述郞·南郞(南石)으로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모두 화랑출신이라는 인식이 강하였으나 안상과 남석에 대해서는 화랑이 아닌 낭도라고 이해하기도 하였다. 안상이 4선의 한 사람으로 등재된 것은 오류이며, 남석(남랑) 역시 화랑으로 볼 수 없다. 현재 4선 중 영랑ㆍ술랑을 제외한 안상ㆍ남석은 화랑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신라 四郞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현전 자료를 볼 때,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신라 4랑의 선발 조건으로서 선현들의 諸說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고려인들이 생각한 신라...
TAG 4선, 4랑, 영랑, 안상, 술랑, 남석, four-seon, four-rang, Yeongrang, Ansang, Sulrang, Nam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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