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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576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정조 후반 순조 초반 정치세력과 정국의 동향 - 정조 16년(1792)~순조 6년(1806)을 중심으로 -
김정자 ( Kim Jeong-ja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443~477페이지(총35페이지)
정조는 12년에 노·소론, 남인 중에서 삼정승을 임명하는 탕평을 이루었고, 13년에는 수원에 사도세자의 묘를 遷園하였으며, 14년에 新邑을 조성하였고, 같은 해에 王子를 낳았다. 왕실의 후사문제가 안정된 후, 사도세자 신원상소가 다시 올라왔다. 정조 16년 영남남인의 萬人疏와 소론의 南學疏였다. 앞서 정조는 즉 위년인 병신년에 소론과 남인의 ‘사도세자 신원상소사건’이 일어나자 그들에게 ‘丙申處分’을 내리고, 『명의록』을 간행한 일이 있었다. 정조는 ‘壬子處分’으로 과거의 사건들이 왕위계승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닌 ‘壬午禍變’까지 연관된 문제라고 밝혔다. 이는 즉위년에 노·소론, 남인세력의 정치적 사안을 대립시켜서 해결했던 ‘以熱治熱’하여 ‘兩治兩解’한 방식의 政局運用術이었다. 정조 17년 정조는 영조 연간의 ‘辛壬義理’를 붙잡고 있던 노론과 ...
TAG 正祖, 純祖, 朴夏源, 鄭東浚, 辛壬義理, 壬午義理, 以熱治熱兩治兩解, King Jeongjo, King Sunjo, Park Ha-wone, Jeong Dong-jun, the Cause of the Sinim-year, Sinim Euri, the Cause of the Imo-year, Imo Euri, “Controling fire with fire”, “I’yeol Chi’yeol”, “Managing both, and resolving both”, “Yangchi, Yang’hae”
경기도 화성지역 3.1운동의 연구동향과 과제
이계형 ( Lee Kye Hyung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479~515페이지(총37페이지)
화성지역 3.1운동은 다른 지역과 달리 투쟁 강도가 거세 일제로부터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이곳의 3.1운동 연구가 활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연구자마다 각기 다른 자료를 제시하거나 해석이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이에 본 연구는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하였다. 첫째, 시위가 같은 장소, 시간에 일어났는데도 연구자에 따라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연구자에 따라 역사적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인 사실내용이 다르면 연구에 대한 신뢰도가 그만큼 떨어진다. 이는 철저한 사료 비판이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측면에서 연구자 본인과 다를 경우에는 이를 각주를 달아 독자들에게 차이점을 알게끔 하고 나름 이유나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둘째, 화성지역 3.1운동의 특징은 식민통치 기관인 면사무소나...
TAG 화성 3, 1운동, 제암리 학살 사건, 3, 1운동 포상자, 3, 1운동 연구소, Hwaseong area 3, 1 Movement, Jeam-ri Massacre, 3, 1 Movement honor, 3, 1 Movement Research Institute
20세기 전반기 대만인과 조선인의 역외이주와 귀환 - 역외이주 및 귀환 규모의 추산을 중심으로 -
문명기 ( Moon Myung-ki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50권 517~553페이지(총37페이지)
본고는 식민지시대에 이루어진 대만인과 조선인의 역외이주 규모와 해방 직후 몇 년 간에 걸쳐 이루어진 귀환 규모를 추산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했다. 이를 위해 조선인의 역외이주와 귀환에 관해서는 기존의 다양하고 풍부한 연구에 기대고, 대만인의 역외이주와 귀환에 관해서는 새롭게 자료를 발굴하고 재구성하여 최대한 조선쪽의 통계나 자료와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본고는 또한 필자가 구상하고 있는 식민지시대 대만인과 조선인의 역외이주패턴에 있어서의 뚜렷한 차이와 그 원인에 대한 탐구를 위한 예비적 고찰 차원에서 일단 두 지역 식민지인의 역외이주와 귀환 규모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다. 두 지역 식민지인의 역외이주와 귀환 규모를 어느 정도 확정하고 나면, 두 지역 식민지인의 역외이주의 패턴의 차이와 그 원인, 그리고 해방 직후의 대규모 귀환에 따...
TAG 식민지시대, 대만인, 조선인, 역외이주, 해방, 귀환, 이주와 귀환의 규모, Colonial Period, Taiwanese, Koreans, Migration, Postwar Era, Return, Scale of Migration and Repatriation
윤봉길의 사상과 독립운동 방략
金度亨 ( Kim Do Hyung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49권 289~319페이지(총31페이지)
윤봉길은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에서 홍구공원의거를 일으켜 한국독립 운동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그가 의거를 결행하게 된 것은 일본에 대한 반제국 주의적인 굳건한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봉길은 담대한 성격을 갖고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부터 매우 독립적인 교육을 받았다. 일곱 살 때부터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고, 오치서숙에서 성주록 선생에게 유교사상을 전습 받았다. 서당에서부터 17세까지 유교경전을 공부하다가,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일본어를 독학하여 신문과 잡지를 통해 상당한 수준의 근대적 학문을 습득하였다. 그리고 윤봉길은 야학을 설립하고, 부흥원을 건립하였으며, 수암체육회 발족 하고, 월진회를 조직하여 농촌계몽운동에 전력을 쏟았다. 월진회를 통해 농민운동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인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고, 농촌계몽운동만으로는 ...
TAG 윤봉길, 홍구공원의거, 김구, 한인애국단, 이봉창, Yoon Bong-gil, Heroic Deed in Hongkew Park, Kim Gu, Korean Patriots Party, Lee Bong-chang
신흥무관학교와 안동인
姜允丁 ( Kang Yunjeong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49권 321~352페이지(총32페이지)
지금까지 만주지역에서 전개된 항일투쟁 가운데 신흥무관학교의 위상과 역 할에 대한 괄목한 만한 연구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성과는 신민회 인사들의 역할이나 중앙사적 시각에 치우친 감이 적지 않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신흥무관학교 설립과정과 운영, 청산리전투 이르기까지 1910년대 만주지역 항일투쟁사에서 큰 축을 이루었던 안동인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1910년대 만주지역에서 전개된 항일투쟁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동포사회의 사회적 경제적 안정 도모, 둘째 자치 단체 조직으로 대·내외적 기반 마련, 셋째 민족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 넷째 병영(兵營) 설치와 운영을 통한 독립군 양성이다. 첫째와 둘째는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필요한 기반 마련을 위한 것이라면, 셋째와 넷째는 실제 독립전쟁을 수행할 인재와 군인을 양성하는 일이...
TAG 신흥강습소, 신흥무관학교, 안동유림, 혁신유림, 구국계몽운동, 김대락, 류인식, 이상룡, 만주, 독립전쟁, New emerging classrooms, Shinheung Independent School, Andong Confucian scholars, Innovative Confucians, Nationalist Enlightenment Movement, Kim Dae-rak, Ryu in-Sik, Lee Sang - Ryong, Manju, Revolutionary War
이회영의 민족혁명과 자유사상
張錫興 ( Chang Seok-heung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49권 353~381페이지(총29페이지)
이 글은 아나키즘의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우당 이회영의 사상적 연원이 19세 기말 이후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민족혁명 과정에서 형성되었음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우당의 70여 평생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자유와 평화라는 궤도에서 끊임없이 이뤄낸 혁명가의 삶 그 자체였다. 10대 후반에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꿈꾸었던 우당은 30대 초 제왕의 시대를 극복하고 사민 자유평등의 시대를 선구적으로 열어 나갔다. 그리고 자유를 향한 우당의 꿈은 스러지는 민족의 운명 앞에서 독립운동으로 전환되어 갔다. 구시대 타파를 위한 사회 개혁의 바램이 독립운동으로 분출되어 간 것이다. 그에게 독립운동은 인간의 자유, 민족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다. 우당의 독립운동에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한 신념이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었다. 그리고 해외 독립군기지 건설을 선구적으...
TAG 이회영, 민족혁명, 자유사상, 독립군기지개척, 이상설, 광무황제, 보황주의, 아나키즘, 인류평화, Lee Hoe-yeong, national revolutionary movement, liberal ideas, pioneering the construction of the independence army base, Lee Sang-Seol, Emperor Gwangmoo, principle of protecting emperor, 保皇主義, anarchism, peace for mankind
일제 식민지시기 이돈화의 저작과 천도교 교리 근대화 작업의 귀결
張圭植 ( Chang Kyusik ) , 羅淵俊 ( Na Younjoon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49권 383~411페이지(총29페이지)
1910년대 이래 이돈화가 꾸준히 수행한 천도교 교리의 근대화는 신칸트학파 철학과 헤겔 변증법, 일본 문화주의 철학과 개조론의 주요 개념과 논리를 차용하여 인내천주의, 수운주의의 체계를 세우는 작업이었다. 『인내천요의』는 그 일 단의 결실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개인의 내재적 신성을 중시하는 동학의 전통적 가치와의 균열이 생겨났다. 이돈화는 그 틈새를 개체와 전체의 변증법으로 논리적으로 봉합하려 하였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그의 지적 탐색은 결국 『수운심법강의』와 『신인철학』 단계에 이르러 전체와 개체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하며 전체에 대한 헌신에서 개체의 가기실현의 길을 찾는 ‘전체’주의로 귀결되기에 이르렀다. 그에 따라 이돈화로 대표되는 천도교 신파의 민족주의 또한 국가주의적 성격을 뚜렷이 하게 되었다.
TAG 이돈화, 천도교 신파, 교리 근대화, 인내천, 수운주의, 수운심법강의, 신인철학, Lee Don-hwa, the New Cheondogyo Faction, Modernization of Cheondogyo Doctrine, Innaecheon, Human is Heaven, Suwoonism, Sinincheolhak, New Human Philosophy
새마을운동 발상지, 그 이웃마을에서 온 편지 - 포항 봉계리의 더 오래된 마을운동 이야기 -
金榮美 ( Kim Youngmi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49권 413~455페이지(총43페이지)
이 연구는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소득을 크게 증가시켜서 가난을 극복한 일제시기 봉계마을의 ‘잘살기 운동’의 경험에 대해 다룬 것이다. 이 운동을 주도 한 인물은 봉계마을의 유지 김인제·김성진이었다. 봉계동의 잘살기 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손꼽히는 성공사례였기에 일제시기 초등학교 교과서인 『수신서(修身書)』에 실렸다. 해방이 된 순간 『수신서』에 실린 이유로 봉계마을의 마을운동은 ‘친일’로 의 미화 되었고, 이들 지도자들은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 망각되었다. 그러나 『수신서』에 대한 분석과 신문자료, 문헌 이면의 역사적 사실들을 추적하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해석에 도달하였다. 박정희 정부가 농민사회의 자생적인 성공사례를 국가적으로 전유함으로써 새마을신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처럼 일제 역시 농민사회의 자생적 성공사례를 동원함으로써 농촌진흥운동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
TAG 김성진, 김인제, 마을운동, 문성리, 봉계리, 새마을운동 발상지, 새마을운동, 수신서, 치동, Kim Seongjin, Kim Inje, Village Movement, Munseong-dong, Bonggye Village, Birthplace of the Saemaul Undong, the Saemaul Undong, the New Village Movement, Susinseo, 修身書, Texts for the Self-cultivation, Chi-dong
한국 고대 도성의 입지와 사상에 대하여
李炳鎬 ( Lee Byongho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49권 1~31페이지(총31페이지)
문헌기록을 통해 볼 때 고구려, 백제, 신라의 도성들은 공통적으로 주변에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있는 분지로써 농업이나 수렵, 어업 등 경제적인 호조건을 갖추고,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방어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고구려의 경우 주몽이 처음 도읍을 정한 곳은 오녀산성과 졸본이 공존하는 형태로 산성과 평지거점이 세트를 이루고 있었다. 3세기 중엽 이후에는 압록강변의 국내성지와 산성자산성이 세트를 이루고, 427년 평양으로 천도한 전기 평양성 단계에는 대성산성과 청암리토성이 세트를 이루는 도성 체계였다. 586년 장안성으로 천도한 이후 이러한 도성 체계를 하나로 결합시킨 새로운 형태의 도성이 출현하지만 고구려의 도성들은 공통적으로 강변에 입지하고 있는데 이 는 水路를 활용하는 문제가 중시되었기 때문이다. 백제 한성기의 도성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평지성과 ...
TAG 평지성, 산성, 도성 체계, 풍수지리설, 사원, plain castles, sanseong, mountain fortresses, capital castle system, Feng Shui philosophy, temples
고구려 유민의 당조 출사 유형과 변화
金秀鎭 ( Kim Sujin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2018] 제49권 33~67페이지(총35페이지)
당조에서 지배층 출신 이민족들의 일반적인 출사 방식은 ‘蕃將’이었는데 고 구려 유민 1세대의 묘지명에서도 번장 출사의 경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 은 번장으로 출사한 후 군공을 쌓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5품이 되면 아들과 손자까지 문음의 대상이 되었고, 3품 이상이 되면 아들, 손자, 증손까지 문음으로 관 직에 진출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이러한 당대의 율령관제의 구조 속에서 유민 1세대들은 관직과 면세, 면역이라는 사회경제적 특권을 代를 이어 유지하 기 위해 필사적으로 군공을 세웠다. 그러나 모든 고구려 유민 1세대가 번장으로 출사한 것은 아니었다. 천남산의 묘지명에 기재된 藁街, 棘署, 北闕은 남산이 당조에서 역임했던 관직들을 표현 한 것으로 보이는데 홍려객관과 홍려시에서 사신 영접과 통역의 임무를 맡았고 태상시에서도 업무를 맡았으며 ...
TAG 고구려 유민, 묘지명, 번장, 군공, 문음, 문관, Koguryo refugees, epitaph, hereditary privilege, foreign general, meritorious service, civil 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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