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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현(西豊縣) 서차구(西?溝) 고분군의 문화적 성격과 계통 -토기의 비교 분석을 중심으로-
오강원 ( Oh Kangwon )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2018] 제58권 80~107페이지(총28페이지)
청동패식과 금속 이기류 등은 서로 다른 물질문화-간에도 수장층의 수요와 집단 성원의 선호에 따라 공유될 수 있는 반면, 토기의 경우에는 성격상 정치적 고려와 일시적인 선호에 의해 쉽게 바뀌지 않는 까닭에 문화적 정체성과 계통을 밝히는데 유효한 분석 대상이 된다. 서풍현 서차구 고분군은 부장 토기의 기종 조합과 개별 기종의 문양과 기형 등이 제1송화강 유역 남북 지역에 분포하고 있던 한서문화와 유사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기원전 2~1세기 서차구 고분군은 물론 서차구 고분군을 표지로 하는 동요하 유역 서차구유형의 직접적인 문화 기원이 한서문화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서차구 고분군은 한서문화 전형의 일부 기종이 결여되어 있다든지 하는 점에서 한서문화와도 일정하게 구분된다. 여러 점을 고려할 때, 서차구유형과 포자연유형은 동일 문화(...
TAG 서차구 고분군, 노하심 중층 고분군, 포자연문화, 서차구유형, 포자연유형, 토기, 문화 계통, 문화 성격, Xichagou tombs, Laoheshen middle layer tombs, Paoziyan culture, Xichagou assamblage, Paoziyan assemblage, pottery, cultural system, cultural character
마한(馬韓) 일상용기(日常容器)의 기능(技能)과 성형(成型)에 관한 연구(硏究): 호남(湖南) 서부지역(西部地域) 주거지(住居址) 출토품(出土品)을 중심(中心)으로
김은정 ( Kim Eunjung )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2018] 제58권 146~171페이지(총26페이지)
이 글에서는 마한 토기와 마한의 일상용기를 정의하고, 호남 서부지역 마한 주거지 출토 토기의 관찰을 통해 생산(성형) 공정의 복원을 시도하였다. 마한의 대표적 일상용기로는 심발·장란형토기·시루·원저단경호·주구토기·이중구연호 등이 있으며, 이들 토기는 점토제작 → 기본성형 → 정형 → 건조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기본성형 공정에서는 구연의 형태가 결정되는데, 이는 제작자의 손동작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정형 단계에서는 원저단경호나 장란형토기의 동체가 부풀려지고 바닥이 둥글려지지만, 시루의 경우는 바닥에 증기공을 뚫고 파수를 부착하는 과정을 통해 기형이 완성된다. 동체 부풀리기와 바닥의 원저화 공정은 타날기술의 도입으로 가능해졌으며, 동체를 두드리는 과정에서 점토의 접합력을 높임과 동시에 얇은 기벽의 토기를 생산 할 수 있게 되었다. 원저화 ...
TAG 마한, 토기, 주거지, 생산, 타날, Mahan, earthenware, settlement, production, beating techniques
탐라의 형성과 고고자료의 상관관계 연구
박경민 ( Park Gyeong-min )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2018] 제58권 52~79페이지(총28페이지)
본고는 ‘탐라’의 사회적 성격과 정체성을 고고자료를 통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목적으로 한다. 선행연구에서는 고고자료를 통해 불평등사회로의 진입, 수장층의 등장, 대외교류의 강화와 같은 정치사 중심적인 연구경향과 신진화주의 발전도식이 접목된 해석이 주로 진행되었다. 본고에서는 탐라전기의 고고자료를 통해 당시의 사회적 성격, 즉 불평등 사회에 관한 것과 인간집단의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였다. 탐라전기의 무덤이나 취락자료에서는 뚜렷한 위계화의 증거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불평등은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적어도 제도화된 계층사회를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탐라의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로서 파악하기보다는 전통과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또는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시의 물질문화는 공유되는 요소와 ...
TAG 탐라, 계층사회, 물질문화, 정체성, Tamna, hierarchical society, material culture, identity
문헌과 고고자료로 본 탐라의 대외교류
김경주 ( Kim Kyoung-ju )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2018] 제58권 26~51페이지(총26페이지)
기원전 1세기 이후 삼한과의 교섭을 통해 성장한 주호가 3세기쯤 상위계층이 등장하면서 대외교류의 주체인 탐라정치체로 전환되었다. 용담동 철기부장묘는 바로 한반도 남부지역 제소국과의 교역체계에 참여했던 상위계층의 존재를 시사하는 것이다. 탐라는 3세기 후반까지 서남해안의 신미제국을 거점으로 연결되는 교역루트를 통해 마한의 선진문물과 함께 변진한 지역의 철기를 수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즉 3~5세기대 탐라의 거점취락에서 출토되는 마한계 외래토기는 당시 영산강유역을 비롯한 서남해안 일대의 정치체와 상호 교류의 증거이다. 한편 영산강유역의 마한세력은 5세기 후반 동성왕의 무진주 친정으로 축소되고 6세기 전반경 백제가 섬진강유 역까지 진출하면서 직접지배 영역으로 포함된다. 이처럼 교역의 거점이었던 서남해안지역 마한세력의 소멸과 백제 의 영역확장은 탐라의 교역체계에 ...
TAG 주호, 탐라, 탐모라, 신미제국, 곽지리식토기, 고내리식토기, Juho, Tamna, Tammora, Sinmi Empire, Gwakjiri-style pottery, Gonaeri-style pottery
타날문토기 등장과정에 대한 재해석 -해남 군곡리유적을 중심으로-
한옥민 ( Han Ok-min )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2018] 제58권 108~125페이지(총18페이지)
본고는 최근까지 연구자간 상호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철기시대 前期의 시간적 공백 문제와 관련한 답을 찾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경질무문토기에 반영된 제작기술의 변화가 타날문토기와 관련되는지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제까지 경질무문토기는 기면에 직접적인 타날문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날문토기 이전의 토기군 또는 취사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된 지체현상 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군곡리의 토기 관찰 결과, 繩文打捺된 경질무문토기의 존재를 통해 타날문토기 제도 기술의 인지 이후로 본격적인 제작과 확산이란 프로세스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자료임을 알 수 있었다. 이에 근거할 시 타날문토기에 대한 인지 시점은 기원전 1세기대로 상회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다만, 호남지역에서 선출하는 타날 문양은 격자문이 절대적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기원전에 성형...
TAG 군곡리, 경질무문토기, 승문타날, 타날문토기, Gungok-ri, hard plain pottery, seungmun beating pattern, beating patterned pottery
전남지역 마한·백제와 가야의 교류
하승철 ( Ha Sehng Cheol )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2018] 제58권 126~145페이지(총20페이지)
이 글에서는 전남지역에서 출토되는 가야토기를 통해 가야 각국과 전남지역 마한·백제의 교류 또는 교섭에 대해 살펴보았다. 전남의 가야문화는 영산강유역과 서남해안 일대, 전남 동부지역으로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산강유역과 서남해안은 교류를 통해 가야 유물이 반입되는 반면 전남 동부지역은 가야문화권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금관 가야와 아라가야 유물은 4세기부터 5세기 전반의 시기에 산발적으로 출현하고, 소가야 유물은 5세기부터 급증한다. 대가야 유물은 5세기 후엽부터 전남 동부지역에 다량 유입된다. 소가야는 5세기부터 마한·백제와 가야의 교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전남 동부지역과 소가야는 토기양식은 물론 주거지의 형태와 구조, 묘제에서도 공통점이 많으므로 소가야 문화권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가야 유물은 5세기 후엽부터 운평리고분군에 집중...
TAG 전남, 마한·백제, 교류, 소가야, 대가야, Jeonnam, Mahan·Baekje, exchange, Sogaya, Daegaya
장수군 제철유적의 분포양상과 그 의미
곽장근 ( Kwak Chang-keun )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2017] 제57권 4~25페이지(총22페이지)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 사이 진안고원 내 장수군에 지역적인 기반은 둔 장수가야는 4세기 후반경 등장해 가야계 소국으로 발전하다가 6세기 초엽경 백제에 복속되었다.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가 백제의 동쪽 진출을 막았고, 사통팔달했던 내륙교통망의 장악, 대규모 구리와 철산개발, 한성기 백제의 간선교통로가 통과하지 않는 지정학 적인 이점도 크게 작용하였다. 이를 배경으로 장수 동촌리 말무덤이 계기적인 발전과정을 거쳐 200여 기의 가야계 중대형 고총이 진안고원의 장수군에만 조영되었다. 장수 동촌리 가야계 고총에서 처음으로 말발굽이 나와 장수가 야가 철의 생산부터 주조기술까지 응축된 당시에 철의 테크노밸리였음이 입증되었다. 금강 상류지역에서 가야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웠던 장수가야는 한마디로 70여개소의 제철유적을 남긴 철의 제국이자 80여 개소의 봉수로 상징되는 봉수왕...
TAG 백두대간, 금남호남정맥. 진안고원, 장수가야, 제철유적, 말발굽, 봉수, Baekdu Daegan, Geumnam Honam vein, Jinan plateau, Jangsu Gaya, Ironmaking remains, Horses hoofs, Signal fires
장수가야의 발전과정과 그 역동성
전상학 ( Sanghak Jeon )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2017] 제57권 26~37페이지(총12페이지)
진안고원에 자리한 장수군 일원에서는 가야와 관련된 많은 유적들이 확인되고, 이들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가야계 소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를 장수가야로 지칭하고자 한다. 장수가야는 5세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6세기 전반에 이르는 오랜 기간동안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하였다. 고총의 분포와 규모, 묘제에서 나타나는 특징, 재지토기의 지속적인 생산 등을 통해 발전과정을 일부나마 추정해 볼 수 있었다. 장수군 일원에는 240여기의 중대형 고총고분이 밀집 분포하고 있으며, 이는 백두대간 서쪽에 유일한 가야계 고총군으로서 재지세력이 가야문화를 받아들여 발전한 양상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발전의 원동력은 철의 생산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최근 보고된 60여개소의 제철유적은 이와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계분지의 침곡리산성과...
TAG 장수가야, 고총, 산성, 봉수, 제철유적, Jangsu Gaya, Tombs, Mountain fortress, Signal-fire, Iron manufacture site
전북 동부지역 출토 철제무기의 전개양상과 의미 -남원·장수 삼국시대 분묘유적 출토품을 중심으로-
유영춘 ( Yu Yeongchun )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2017] 제57권 38~75페이지(총38페이지)
최근 실시된 지표 및 발굴조사를 통해 전북 동부지역은 과거 우리나라 철기문화의 새로운 중심지였음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특히 삼국시대 분묘유적을 중심으로 철촉, 철모, 도검 등 다양한 철제무기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피장자의 성격 및 이 지역의 철기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지만, 그 동안 연구가 미진하였다. 따라서 본고는 전북 동부지역을 남강, 금강, 섬진강수계(水系)로 나누고 철제무기의 전개양상과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이 지역의 철기문화를 단편적으로나마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연구결과, 수계별 철제무기의 전개 및 소유양상 등이 파악되었으며, 철제무기들은 이 지역 제작기술을 토대로 백제 등 주변지역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철기에서 고령, 합천 등 대가야의 중심지와는 다른 지역성이 확인된다. 따라서 전북 동부지역을...
TAG 철기, 무기, 마구, 철촉, 철모, 도검, 제철유적, 고분, 가야, 삼국시대, Iron Age, arsenal, harness, iron arrowhead, iron spear, iron swords, iron production remains, ancient tomb, Gaya, the Three Kingdoms era
송국리형취락의 생산과 소비 양상 -개별 주거와 취락을 중심으로-
이종철 ( Lee Jongcheol )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2017] 제57권 76~99페이지(총24페이지)
청동기시대의 취락은 다양한 형태의 생산과 소비 활동을 통해 구성원 간의 소통과 결속을 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취락에서의 생산은 생활에서 필요한 도구나 용기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생계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곡물 생산이 대표적일 것이며, 이렇게 생산된 재화의 다양한 소비와 유통을 가능하게 했을 사회적 시스템이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이러한 시스템이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분명하게 확인되지는 않지만 송국리형취락에서는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청동기시대 중기 단계의 대표적 문화 주체인 송국리형문화 집단은 중·소단위 또는 대단위 취락을 영위하면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발전시켰고, 전국적으로 동일 범주의 토기를 가마에서 생산해냈다. 뿐만 아니라 취락 내에 석기 제작과 옥가공이 전문적으로 이루어진 주거를 통해 전문 장인의 존재를 상정할 수 있다. 취락에서 공동체...
TAG 청동기시대, 송국리형문화, 송국리형취락, 송국리형주거, 생산, 소비, Bronze Age, Songguk-ri type culture, Songguk-ri type settlement, Songguk-ri type house, Production, Consum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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