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주자의 생애
중국 송대(宋代)의 유학자. 자 원회(元晦)중회(仲晦). 호 회암(晦庵)회옹(晦翁)운곡산인(雲谷山人)창주병수(滄洲病)둔옹(遯翁). 이름 희(熹). 푸젠성[福建省] 우계(尤溪) 출생. 선조는 대대로 휘주무원(徽州安徽省)의 호족으로 아버지 위재(韋齋)는 관직에 있다가 당시의 재상(宰相) 진회(
당말. 오대의 혼란을 극복하고 통일을 달성한 宋代에 들어와 중국의 사회 경제는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변화와 발달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 기원은 당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대개 모병제가 실시된 이후로부터 토지사유제의 발달과 농업생산의 질적, 양적 발전이 이루어지기
송학이 발생한 사회적 배경
오대의 뒤를 이어 받은 송은 남북을 합쳐서 3백년의 통일을 이룩 하였는데 그 정치와 문화를 담당한 사대부는 이미 문벌귀족의 성격을 가지지 못하고, 관리가 되어도 자식에게 세습하지 못했으며, 원칙적으로 일반서민 사이에서 등용되었다. 수당시대부터 문벌주의를 타파
2) 국외적 상황
독일의 역사학자 빗트포겔은 진(秦)이후의 중국 역사를 전형적 중국왕조와 정복왕조로 구분하였다. 이 때, 북위를 비롯한 북조의 여러 왕조들은 정복왕조가 아닌 침투 왕조로 구분하였는데, 지배 민족의 문화와 피지배 민족의 문화를 융합시키는 문화변용이 일어났는가를 기준으로
밝혀 놓았다. 주희는 말한다.
“형이상인 것은 모습도 없고 그림자도 없다. 이것이 이치이다. 형이하인 것은 형상도 있고 모양도 있다. 이것이 사물이다.”
한 사물은 그 이치의 구체적 실례이다. 만일 이러한 이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러이러한 사물도 존재할 수가 없다. 주희는 말한다.
주자학의 내용은 크게 나누어서 네 가지 혹은 다섯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가 있다. 첫 번째는 존재론, 즉 ‘이기’설, 두 번째는 윤리학 혹은 인간학, 즉 ‘성즉리’의 설, 이 윤리학 부분이 주자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세 번째는 방법론, 즉 거경궁리의 설, 네 번째는 고전주석학 및 저술로 요컨대 「
이것을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성리학적 유교문화가 바탕하고 있는 인간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자들은 이러한 인간관을 통상적으로 `유교적 인본주의`로 불러 왔으나 아직도 정확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정밀한 이해가 가능하다면 동아시아문화가 어떠한 인간관에 바탕하
등장하는 것이다.
「중(中)」의 의미는 주자(朱子)가「불편불의(不偏不倚), 무과불급(無過不及)」라는 풀이한 것처럼 「기울어지지 않고 기대지도 않으며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것」이다. 용(庸)에 대해서 정이천(程伊川)은 「불이(不易)」, 주자(朱子)는 평상(平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는
만물 생성의 과정을 ‘태극―음양―오행―만물’로 보고 또 태극의 본체를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그 본체는 무성무취(無聲無臭)한 것이므로 이를 무극이라 하는 동시에 우주 만물이 이에 조화(造化)하는 근원이므로 태극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자는 이것을 해석
주자는 ꡒ천지가 있기 전에는 필경 理만 있었을 뿐이다. 이 같은 理가 있기에 이같은 천지가 있다. 만일 이러한 理가 없다면 이러한 천지도 없고, 사람과 사물도 없으며,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다. 理가 있으므로 氣가 있고, 氣가 유행하여 만물을 발육시킨다.ꡓ라고 말했다. 또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