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관을 부정하면서 소외의 개념으로부터 브레히트가 기한 연극에서의 소외효과는 단순한 연극기법이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에 대해 거리와 이성을 가지고 분석적이고도 비판적인 태도를 갖도록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현실변화에 참여케 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브레히트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해주고 있다. 그녀는 벙어리인데다가 자기 앞가림도 할 줄 모른다. 정상인들이 무기력하게 벌벌 떨며 기도밖에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공포심을 의연하게 딛고 일어나 북을 치며 위험을 알린다. 민중들은 현실의 제약이나 행동의지의 부족 등으로
반대했다. 관객은 무대에서의 사건이나 등장인물과는 밀착해서는 안 되며,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무대를 대해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Brecht는 무대에서의 사건이나 어디까지나 그것이 '연극적인 것'이지, 사실 그 자체나 현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표현주의 논쟁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하나, 브레히트는 표현주의 논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으며 루카치와 공식적으로 논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표현주의 논쟁이라고 볼 수는 없다.
- 이들의 논쟁의 주된 쟁점은 리얼리즘의 구현 방식이었다.
- 브레히트는 리얼리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단
연극이 갖고 있는 날카로운 사회적 ․ 도덕적 목적을 되찾는 것이었다. 무대는 우선 넓은 의미의 정치적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연극이 사실을 다루는 과학 실험실이어야 하며 그 사실은 객관적으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레히트는 피스카토르가 자신에게 미친 영
하거나 반대로 자신의 시점을 드러내기 위해 즉흥적인 기법들을 이용했고, 때로는 기묘한 관념적 표현을 위해 그 2가지 방식을 결합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소설가인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원작을 영화화한 〈경멸 Le Mepris 〉 은 주류 영화제작 방식으로 비교적 경비를 많이 들여 만든 유일한 영화였다.
하면 그는 '모든 철학은 언어비평이라는 주장(Devis, daß alle Philosophie Sprachkritik sei)ꡓ으로 현대의 언어 비판적 작가 세대인 비인 그룹(Wien Gruppe)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 그룹의 영향력은 50-60년대에는 하이미토 폰 도데러(Heimito von Doderer, 1896-1966), 70년대에는 페터 한트케, 80년대에는 토
하였는데, 대표작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1939) 《푼틸라씨와 그의 하인 마티 Herr Puntila und sein Knecht Matti》(1941)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애 Das Leben des Galileo Galilei》(1943), 그리고 《코카서스 백토(白土)의 테 Der Kaukasische Kreidekreis》(1945) 등은 극장과의 관계가 모두 단절되었
서사극은 극에서의 이성, 판단, 객관성을 주장했다. 서사극은 관객이 극중 사건이나 인물 속에 적극적으로 몰입되는 것을 반대, 극과의 거리, 불연상태를 주장하여 Verfremdung(영어로는 alienation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뜻은 못된다.), 즉, 유리작용을 내세웠다. 관객은 무대에서의 사건이나 등장인물과는 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