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보 역시 젊었을 적에는 세상사 특히, 성리학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이상세계를 꿈꾸며 현실을 바꾸어 가고자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몇 차례의 사화는 사림들에게는 개혁을 희망하며 왕도정치를 이상적 정치상으로 삼던 그들의 의지를 무참히 좌절시키고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하나의 요
농암의 시가를 이상과 같이 살펴보았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시가사적 의의를 찾아 볼 수 있다.
첫째,우리말로 된 시가의 창작시기가 그의 치사 이후인 노경에 들어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중년 이후 그는 귀거래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이 여의치 못하고 76세에 귀향하면서부터 주로 창작
전통적으로 자연은 인간의 삶의 터전으로서 존재해 왔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인식은 동양인들에게는 더욱 각별하여 조선시대의 사대부들과 같은 경우에는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공간을 자연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연이 조화가 이루어진 완벽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현실 세계를 자연
Ⅰ.서론
전통적으로 자연은 인간의 삶의 터전으로서 존재해 왔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인식은 동양인들에게는 더욱 각별하여 조선시대의 사대부들과 같은 경우에는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공간을 자연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연이 조화가 이루어진 완벽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현
② 이현보 <어부가>
조선 명종 때 이현보가 지은 5수의 연시조다. 작자는 고려 때부터 전해오던 12장의 장가를 9장으로 개작하였고, 이를 다시 개편하여 5수의 시조 형태로 남겼다. 명칭 상 장가 '어부가'와 구별하여 '어부단가'라 부르기도 한다. 시적 주인공인 어부의 형상을 설정하고 추상적인 어부
안동의 역사적 배경
신라때는 고타야군(古陀耶郡)으로 되었다가 고구려에 인접한 관계로 한때는 고구려에 속하여 굴화현(屈火縣)으로 불리었으며 진흥왕때 부터는 계속 신라에 속하게 되었다.
경덕왕(757년)때 군현제도(郡縣制度)의 개혁으로 고창군(古昌郡)으로 개칭되었다가 그 후 일계군(一界郡)
첨단 매체들마저도 속속들이 더 편하고 쉬운 기능으로 탈바꿈하는 시대의 도래는 사람들로 하여금 빠르고 신속한 세계에의 도입을 끝없이 유도하며 온 세계가 한 덩어리로 운동하게 하여 각자의 멋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유입된 문화들이 우리 고유의 문화를 점차 잠식해 가고
시조를 읽는 방법
① 시조의 형태를 알아본다 : 시조는 3장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3장 3줄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6줄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각 장의 구(句)를 2구씩 한 줄로 하여 6줄로 벌여 놓아도 형식은 평시조이다. 또 같은 평시조라도 어느 구가 몇 자씩 더 늘거나 줄 수도 있다. 이
<시조의 종류와 향유층>
모든 분류가 그러하듯 시조의 경우에도 절대절명의 유일한 분류법이란 있을 수 없다.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분류할 것인가와 같은 분류 기준이 달라짐에 따라 분류 내용도 여러 가지로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조의 학문적 이해를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