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9세기 학자 溪堂 柳疇睦(1813-1872)의 교육활동을 정리한 것이다. 유주목의 교육활동은 강의를 통한 교육과 問目答書를 통한 교육 등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강의를 통한 교육은 1868년에 실시된 講會의 절목인 『漢堂講會節目』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강회의 교재는 『小學』으로, 여기에는 ``日用의 실천``을 학문의 궁극적 목적으로 생각한 유주목의 학문관이 반영되어 있다. 또, 「계당강회절목」에는 강회의 진행 절차와 講生들이 지켜야 할 유의사항들이 실려 있는데, 이를 보면 유주목은 지식적인 성취보다도 학문에 임하는 바른 자세, 강생 상호간의 존중과 격려, 스승에 대한 공경 등 실천의 측면을 더 중시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주목은 제자들이 질문 내용을 問目으로 정리해 보내면 그에 맞는 답변을 회신해 주었는데, 이러...
王世貞은 明代중엽의 저명한 작가이자 문론가로, 李攀龍과 함께 당시 문단을 20여년 간 이끈 后七子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문학에 있어서 시문의 복고를 주창하여, 개성과 창의성을 도외시하고 모방과 표절의 폐해를 남겼다는 명가를 받기도 한다. 그의 저서의 방대함은 중국의 역대문인 중 단연 으뜸으로, 《감州山人四部考》(174권) 《續稿》(207권)는 그의 전집이며, 문학 및 예술론은 《藝苑치言》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우선 王世貞의 생애와 저술을 통해 그가 李攀龍과 달리 詩文과 經學을 동시에 중시한 면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王世貞의 문학과 사상은 유교 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의 영향도 깊게 받고 있음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즉 그가 備、繹、道三者에 대한 認鐵문제에 있어서 유가의 훈도를 받고 자라면서 불가와 도가사상도 받아들여 삼교사상을 융합하였음을 알 수 있다...
蔣士銓은 淸代 乾隆 시기 性靈詩派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당시 ``乾隆三大家``로 불리며 시와 희곡 등 적지 않은 작품을 남겼다. 詩學理論 방면에서 본다면, 그는 忠孝와 節義의 몸가짐으로 일생을 보내며 論詩 성격을 띤 몇몇 시편과 序跋類의 산문 중에 자신의 개성적인 이론을 제시하였다. 먼저 시는 인간의 진솔한 性情을 표출해내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야 하며, 이와 같은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만이 개성이 담긴 자신만의 시를 지을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나아가 이렇게 표출된 진솔한 성정은 인륜 중의 忠孝와 義烈의 덕목으로 발현되어야 후세에 전해질 수 있을뿐더러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는 또한 역대로 자신이 제기한 이러한 詩作 정신에 가장 충실했던 작가는 바로 盛唐 시기의 杜甫였음을 말하고, 두보 시에 대한 무한한 추숭...
예천지방에 존재하는 殷山九曲과 水落臺九曲에 대한 학술조사를 실시하여 각 구곡의 위치를 고증하고 그 원림적 특정도 추출하였다. 은산구곡에 대한 구곡시는 찾을 수 없었으나 수락대구곡에 대한 구곡시는 3편이나 전하고 있었다. 영주 봉현의 池方山에서 발원한 석관천이 내성천으로 흘러들면서 결절된 승지가 바로 수락대이고 이곳을 전후로 하여 설정된 구곡이 바로 수락대구곡이다. 수락대구곡 원림을 가정 먼저 설정한 사람은 四勿齋 宋相天이었으나 본격적으로 설정하고 경영한 사람은 鶴林 權訪이다. 수락대구곡시는 송상천이 젊은 시절 권방의 은거지인 수락대를 방문하고 「水落臺九曲詩」를 지어 권방에게 보내자 권방이 이에 화답하는 「水落臺漁歌九曲詩」를 지었으며 뒤에 권방의 구곡시에 대해 石窩 權褘가 차운하여 「水落臺九曲詩」를 지었던 것이다. 권방이 설정한 수락대구곡은 제1곡이 觀魚臺, 제...
『동사찬요』는 책의 대부분이 열전으로 구성되어 었다. 「열전」 부분만을 놓고 본다면 이 책은 조선중기 이후 활발하게 편찬되기 시작하였던 인물 관련 전문 저술의 선구를 이룬다. 서술의 기본 원칙을 보여주는 범례는 8권본에는 13개조였으나 11권본에는 16개조로 바뀌었다. 범례에서 나타나는 열전의 서술원칙은 엄격한 포폄의 적용, 인물의 경중에 따른 차별화된 서술, 자료의 충실한 인용과 인용처 표기, 고려말 절의파 인사들에 대한 폭넓은 자료 수집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조선전기 「경국대전」 중심의 국가 체제 정비의 역사학적 산물이 「동국통감」이며, 이에 따라 「동국통감」은 국가 체제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제도적 전개 등을 중시하였다. 이에 반해 임진왜란 후에 나온 「동사찬요」는 편년적 기술 속에서 사라진 인간의 활동을 주목하였다. 물론 이때의 인간 활동...
본 논문은 당대(當代) 중국에서 유교의 가치정립에 중점을 두고, 오늘날 사회에서 합리적 생장점을 찾음으로써 유교의 방법을 새로 세우는 데 유익함에 이르게 되기를 바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관심을 원시유교의 진실한 역사적 면모에 두고, "정치는 하나에서 나온다 (治出於日)"는 정치신앙 공동체의 사회형태를 보여주고 그것의 진정한 가치와 지위 및 작용을 나타내며, 유교가 "物事兩非"의 상황 아래에서 어떻게 시대와 적응할 수 있고, 또한 어떻게 이론적 근거 및 적합한 근접점을 발휘할 수 있는지 파악하였다.
본 논문은 당대(當代) 중국에서 유교의 가치정립에 중점을 두고, 오늘날 사회에서 합리적 생장점을 찾음으로써 유교의 방법을 새로 세우는 데 유익함에 이르게 되기를 바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관심을 원시유교의 진실한 역사적 면모에 두고, "정치는 하나에서 나온다 (治出於日)"는 정치신앙 공동체의 사회형태를 보여주고 그것의 진정한 가치와 지위 및 작용을 나타내며, 유교가 "物事兩非"의 상황 아래에서 어떻게 시대와 적응할 수 있고, 또한 어떻게 이론적 근거 및 적합한 근접점을 발휘할 수 있는지 파악하였다.
본 논문은 당대(當代) 중국에서 유교의 가치정립에 중점을 두고, 오늘날 사회에서 합리적 생장점을 찾음으로써 유교의 방법을 새로 세우는 데 유익함에 이르게 되기를 바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관심을 원시유교의 진실한 역사적 면모에 두고, "정치는 하나에서 나온다 (治出於日)"는 정치신앙 공동체의 사회형태를 보여주고 그것의 진정한 가치와 지위 및 작용을 나타내며, 유교가 "物事兩非"의 상황 아래에서 어떻게 시대와 적응할 수 있고, 또한 어떻게 이론적 근거 및 적합한 근접점을 발휘할 수 있는지 파악하였다.
본 논문은 당대(當代) 중국에서 유교의 가치정립에 중점을 두고, 오늘날 사회에서 합리적 생장점을 찾음으로써 유교의 방법을 새로 세우는 데 유익함에 이르게 되기를 바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관심을 원시유교의 진실한 역사적 면모에 두고, "정치는 하나에서 나온다 (治出於日)"는 정치신앙 공동체의 사회형태를 보여주고 그것의 진정한 가치와 지위 및 작용을 나타내며, 유교가 "物事兩非"의 상황 아래에서 어떻게 시대와 적응할 수 있고, 또한 어떻게 이론적 근거 및 적합한 근접점을 발휘할 수 있는지 파악하였다.
본 논문은 당대(當代) 중국에서 유교의 가치정립에 중점을 두고, 오늘날 사회에서 합리적 생장점을 찾음으로써 유교의 방법을 새로 세우는 데 유익함에 이르게 되기를 바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관심을 원시유교의 진실한 역사적 면모에 두고, "정치는 하나에서 나온다 (治出於日)"는 정치신앙 공동체의 사회형태를 보여주고 그것의 진정한 가치와 지위 및 작용을 나타내며, 유교가 "物事兩非"의 상황 아래에서 어떻게 시대와 적응할 수 있고, 또한 어떻게 이론적 근거 및 적합한 근접점을 발휘할 수 있는지 파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