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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AND 간행물명 : 남명학연구579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면우(勉宇) 곽종석(郭鍾錫) 소찬(所撰) 남명묘지명(南冥墓誌銘)에 대한 소고(小考)
허권수 ( Kweon Soo Heo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4권 105~136페이지(총32페이지)
勉宇 郭鍾錫이 지은 「南冥墓誌銘」은, 南冥을 두고 지은 傳記文字 가 운데서 가장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서술이라 할 수 있다. 남명 전기문자 의 최후결정판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남명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빠짐 없이 수록해 놓았다. 묘지명으로서는 매우 긴 작품으로 일반적인 묘지명의 틀과 다른 점이 많다. 면우는 이 묘지명을 지으면서 자료를 최대한 널리 수집하여 신중에 신중을 기하였고, 다 완성된 뒤에도 당시 慶尙道 지역에서 문장으로 손꼽히는 제자 深齋 曺兢燮과 晦峯 河謙鎭에게 문제점을 지적하여 같 이 수정하고 보완하여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원래의 請文者 弦齋 曺庸相을 통하여 深齋가 사소한 문제로 지나치게 장기간 문제를 지적하고 나오자, 마침내 자기가 지은 「南冥墓 誌銘」은 폐기하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 9년 뒤인 192...
TAG 면우, 남명묘지명, 종합적, 위대성, 경의, 敬義, Gwagjongsug, Nammyung`s Epitaph, greatness, comprehensive work, pious and rightness
19세기 남명학파의 동향 일고찰 -월촌(月村) 하달홍(河達弘)의 삶과 교유활동을 중심으로-
박동일 ( Dong Il Park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4권 137~161페이지(총25페이지)
月村 河達弘은 19세기 강우지역에서 활동했던 학자이다. 그는 실용 을 중시하는 학문경향을 가지고 南冥 曺植과 謙齋 河弘度를 존숭하며 慕寒齋에서 강학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로써 인근의 학자들을 운집시키 고 그들에게 남명학파로서의 의식을 고취시켰다. 이때 月皐 趙性家ㆍ 溪南 崔琡民ㆍ東寮 河載文ㆍ克齋 河憲鎭ㆍ斗山 姜柄周ㆍ尼谷 河應魯 등이 그의 문하에서 종유하였다. 이후 조성가와 최숙민은 하달홍의 인도 아래 보다 체계적인 학문을 위해 노사학단에 나아가 奇正鎭에게 수학하였다. 한편 하재문과 하헌 진은 본거지로 돌아가 寒州 李震相과 교유하였고, 강병주와 하응로는 性齋 許傳에게 나아가 집지하였다. 조성가와 최숙민이 노사학단의 핵심인물로 자리매김한 것에 비해 하재문이 한주학단에서나 강병주가 성재학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 리 크지 않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남명을 존숭하고 학...
TAG 남명, 南冥, 월촌, 月村, 하달홍, 河達弘, 모한재, 慕寒齋, 남명학파, 기정진, 노사학파. Nammyeong study, 南明學, Nosa School, 蘆沙學派, Ha Dal-hong, 河達弘, Mohanjae, 慕寒齋, Cho Sung-ga, 趙性家, Choi Suk-Min, 崔琡民
조선시대 지방 관제와 목민관 한범석
이상훈 ( Sang Hoon Lee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4권 163~185페이지(총23페이지)
조선은 건국 이래 중앙집권 정치를 표방하고 각 행정의 말단까지 수령을 파견하여 통치하고자 했다. 조선 초기 지방관은 지방 세력의 억제 정책 속에서 ‘守令七事’의 임무를 가지고 파견되었는데, 이 임무는 명목상으로는 조선말까지 유지되었다. 조선 중기 지방 사족에 의한 향 촌 지배 주도의 시기를 거쳐, 조선 후기 지방제도는 왜란과 호란의 피해 복구가 끝나고 국가의 안정을 이룬 가운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조선후기 지방제도는 국왕의 왕권 강화책과 맞물려 지방에 대한 역 사, 지리, 호구, 양전 등의 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지리서 간행, 통치 강화를 위한 새로운 법전의 편찬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또한 수령의 권한을 강화하여 지방의 부역과 조세, 교육 등에 지접 관여하는 한편, 새로 부를 축적한 중인층이나 서얼, 몰락 양반 등은 납속책 등을 통하여 국가 ...
TAG 수령칠사, 守令七事, 한범석, 韓範錫, the governors mission to 7th works, 守令七事, Han Bum Seuk, 韓範錫, 1672-1734, local government system of late Chosun dynasty, Jeju governor, 濟州牧使, relief work, 救恤
영조조(英祖朝) 세종(世宗),단종(端宗) 태실(胎室)의 수개(修改) 역사(役事)
김해영 ( Hae Young K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4권 187~220페이지(총34페이지)
이 글은 조선시대 국왕 태실을 개보수하는 공역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영조조에 있었던 세종과 단종 두 태실의 수개 역사를 사례로 하여 고찰한 글이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에는 국왕 태실에 어떤 결함이 발견되면 태실 소재지의 수령이 이를 관찰사에게 보고하고, 관찰사는 즉시로 태실 현장을 찾아 奉審한 뒤 이를 중앙에 보고하였다. 이렇게해서 관찰사의 보고가 중앙 에 이르면 禮曹에서는 관찰사의 봉심 내용을 중심으로 修改 여부에 대한 의견을 붙여 국왕에게 啓聞함으로써 태실 수개 여부가 결정된다. 태실의 수개가 결정되면 공역에 적당한 일자를 택정하고, 예정된 태 실 수개 일정에 맞추어 本道와 중앙의 해당 관사에서 준비해야 할 인력 과 잡다한 물품, 제반 준비 사항을 확정하여, 이를 본도 및 해당 관사에 미리 알려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 그러...
TAG 태실, 胎室, 세종, 世宗 태실, 胎室, 단종, 端宗 태실, 胎室, 태실, 胎室 수개, 修改, 태실, 胎室 의궤, 儀軌, royal placenta chamber, King Sejong`s placenta chamber, King Danjong`s placenta chamber, repairing the royal placenta chamber, protocols on the royal placenta chamber
『용호비결』의 문헌적 계보
안동준 ( Dong Zoon Ahn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4권 221~263페이지(총43페이지)
용호비결은 한국 도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내단 서 적으로서, 여러 가지 異本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문헌적 검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초기 이본으로 간주되는 .단학지 남.이 발굴되어 학계에 소개된 이후에 현전하는 용호비결의 판본에 대한 관심이 일부 나타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문헌적 계보가 파악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용호비결의 특징과 그 수련법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가 진행되지 못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용호비결 관련 여러 문헌 자료를 대조하여 본문을 철저히 검토한 다음, 갑인자본 .주역참동계발휘.에 근거하여 용호비결 의 원형을 탐색하고, 이를 근거로 문헌적 계보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기초적인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용호비결이 지닌 사상사적인 성격을 해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현전하는 용호비결의 이본으로는 널...
TAG 용호비결, 주역참동계발휘, 단학지남, 기사진전, 동의보감, 도서전집, Yonghobigeol, 龍虎秘訣, Juyeokchamdonggyebalhwi, 周易參同契發揮, Gyshajinjeon, 祈嗣眞詮, Danhakjinam, 丹學指南, Donguibogam, 東醫 寶鑑, Doseojeonzip, 道書全集
『국조시산(國朝詩刪)』의 두 계열에 대하여
임미정 ( Mi Jung L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4권 265~316페이지(총52페이지)
이 논문은 허균의 한시 선집인 .國朝詩刪.에 대한 문헌적 검토로, 현전 이본을 조사하고 계열화 하여 .國朝詩刪.의 선본을 확인하고 앞 으로의 연구 방향에 대해 제안한 것이다. 그동안 .國朝詩刪.에 대한 연구는 주로 목판본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이 목판본은 허균의 ‘원본’을 목판 간행자인 박태순이 재편집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허균의 .國朝詩 刪.을 바르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원본의 모습을 재구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실본 조사에 앞서 우선 허균이 남긴 .國朝詩 刪.과 관련된 기록들을 살펴서 ‘원본’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허균의 기 록을 근거로 하여 국내외 기관과 대학도서관 등에 흩어져있는 .國朝詩 刪.을 발굴, 검토하여 원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본들과 그렇지 않은 이본들을 ‘원본 계열’과 ‘목판본 계열’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그 결과 ‘허균...
TAG 허균, 『國朝詩刪』, 한시 선집, 『Gukjosisan(國朝詩刪)』, Heo Gyun, 許筠, Anthology
『표해록(漂海錄)』과 『승차록(乘蹉錄)』에 나타난 산동(山東) 인식의 비교
손지수 ( Ji Si Sun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4권 317~343페이지(총27페이지)
본고에서는 崔溥의 .漂海錄.과 崔斗燦의 .乘.錄.에 나타나는 두 저자의 산동 인식을 각각의 시대 별로 살펴보았다. 중국 당나라와 원나라는 국제화 정책을 시행하여 많은 유학생을 수 용했다, 그러나 명나라 건국 이후에는 쇄국정책을 실시하여 유학생 수 용을 금지했다. 이로 인해 조선의 선비들은 중국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 가 줄었고, 대체로 책을 통해서 중국을 체험하게 되었다. 명.청 시기, 조선에서 공식적으로 파견한 사신들은 중국에 관한 기록을 남겼으나, 사신의 신분으로는 북경 이남 지역의 경험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북경 이외의 지역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비공식적인 漂流人 의 경우 북경 이남 지역을 경험하고 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崔溥와 崔斗燦의 저작이 가장 대표적이다. 崔溥와 崔斗燦은 표류인의 자격으로 북경 이외의 지역을 경...
TAG 최부, 崔溥, 최두찬, 崔斗燦, 『표해록, 漂海錄』, 『승차록, 乘蹉錄』, 표류, 산동 인식, drifters, Shandong experience
교육용 기초한자 "자소표" 제정의 필요성과 몇 가지 선결과제
박추현 ( Choo Hyun Park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4권 345~377페이지(총33페이지)
본고는,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가 교육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유용하게 활용되기 위해서는 보완책이 필요하고,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자소목록의 정리를 통한 ‘자소표’의 제정이라는 것을 논의 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또한, ‘자소표’의 제정을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 야만 하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한자의 파생관계는 의부 혹은 음부에 의해 매우 유기적으로 이루어 진다. 의부와 음부는 일정한 수의 자소에 의해 구성되고, 그들은 다시 다양한 층차로 결합하여 수많은 새로운 글자들을 구성한다. 이를 거꾸 로 이야기하면, 아무리 많은 수의 한자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단계별로 분석하게 되면 일정한 수의 字素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효율적으 로 한자를 가르치거나 학습하는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이지만, 우...
TAG 자소, 字素, 자소명칭, 字素名稱, 자소조, 字素組, 자소표, 字素表, 변이자소, 變異字素, 분석층차, 分析層次, 색인, 索引, grapheme, grapheme group, grapheme-table, layer of analysis, variant grapheme, name of grapheme, establishment of index
병사(兵使) 한범석(韓範錫)의 가세(家世)와 생평(生平)
허권수 ( Heo Kweon Soo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3권 1~27페이지(총27페이지)
청주한씨(淸州韓氏)는 고려(高麗) 중기 이후로 명공거경(名公巨卿)과 문인학자(文人學者)들이 대를 이어 배출되는 혁혁한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 더욱 번창하였고, 成宗 때 한계희(韓繼禧)의 대에 이르러 번창함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 손자 한승리(韓承利)가 진주(晋州)에 은거한 이후로는 중앙관계(中央官界)와 관계를 맺을 기회가 줄어 자연히 고관대작(高官大爵)으로의 진출은 어렵게 되고, 중앙의 명벌가(名閥家)와의 연혼(聯婚)이 어렵게 되자, 결국 진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족계급(地域士族階級)으로 변화하였다. 또 진주의 지역사족으로 변화한 이후로는 주로 武科를 통한 사환(仕宦)으로 가성(家聲)을 지속해 나갔다. 그런 인물 가운데 조선 숙종(肅宗) 영조(英祖) 때 활약한 병사(兵使) 한범석(韓範錫)과 그의 후손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한...
TAG 무인, 한범석, 진주, 목민관, 사행, armed officials, Hanbeomseok, Jinju, provincial minister, envoy, 武人, 韓範錫, 晋州, 牧民官, 使行
병사공 한범석의 대일본 의식
정영실 ( Jeong Young Sil ) , 장원철 ( Jang Won Cheol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3권 29~57페이지(총29페이지)
한범석은 1711년 군관의 신분으로 신묘사행에 참가하여, 부산에서 에도까지 일본 각지를 지나며 느낀 감회와 일본 문화에 대한 견해를 시종일관 객관적이고도 솔직한 어투로 기록하고 있다. 한범석의 사행록은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자료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논하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없었던 신묘사행의 군관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신묘사행에 대한 보다 입체적인 접근을 가능케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범석은 이문화와의 직접적인 교류가 허락되지 않은 시대에 연행사와 통신사를 모두 수행한 인물이며, 그 중에서도 중국과 일본에 대한 기록을 모두 남긴 극히 드문 경우로 당시 조선인의 살아있는 동아시아관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상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은 1711년 신묘사행이라는 특정 시기에 관한 고찰을 토대로 조선 통신사와 사행록에...
TAG 한범석, 韓範錫, 1711년 신묘사행, 통신사, 사행록, Han Beomseok, Shinmyo Diplomatic Envoy of 1711, Joseon Tongsinsa, envoy travel accounts to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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