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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AND 간행물명 : 남명학연구579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한범석(韓範錫:1672-1743) 교지(敎旨)의 역사적 가치
김학수 ( Hak Su K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3권 59~105페이지(총47페이지)
이 글은 조선후기 영남이 배출한 대표적 무장 한범석(韓範錫)의 교지류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검토한 것이다. 한범석은 남명학파의 핵심이자 학문의 전통이 깊었던 청주한씨 조은가문(釣隱家門)에서 태어났으나 무과로 발신하여 영조대에는 병사(兵使)에까지 오른 현달한 무장이었다. 그가 남긴 교지류는 무과합격증인 홍패(紅牌), 인사 발령 교지를 비롯하여 유서(諭書)·유지(有旨)·녹패(祿牌)·사급기(賜給記) 등 총 50점에 이른다. 인사 발령 교지의 경우, 현전하는 무신 관련 교지 중에서는 자료적 밀집성이 매우 높아 무신의 관직생활을 추적·복원할 수 있는 사료적 장점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유서는 내용상 ‘밀부유서(密符諭書)’에 해당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특정 관직의 경우 한범석의 유서가 유일한 것이 있어 고문서의 새로운 발굴과 집적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주목되었다...
TAG 한범석, 교지, 홍패, 유서, 유지, 사급기, 대가, 代加, Han Beomseok, Gyoji, king`s order, Hongpae, certificate of the state examination, Yuseo, King`s instruction, Yuji, one of Seungjeongwon documents, Sageupgi, a document of king`s presents, Deaga, promotion advantage by rel
한범석의 청나라 파견과 그 의미
김동석 ( Dong Suk K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3권 107~134페이지(총28페이지)
1710년 청나라에서 해적이 출현하자 황제는 해적을 소탕하고 여적(餘賊)이 있을 까 걱정하여 조선에 알린다. 조선에서는 이에 대한 화답으로 사은사(謝恩使)를 준비하여 사은겸삼절년공사(謝恩兼三節年貢使)로 정사 정재륜(鄭載崙)과 부사 박권(朴權), 서장관 홍우령(洪禹寧)을 북경에 보낸다. 이들보다 앞서 10월 5일, 당시 39세 였던 한범석을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의 자격으로 북경에 보낸다. 한범석을 포함하여 1710년에 북경을 다녀온 조선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남긴 기록은 현재 발견할 수 없다. 다만 한범석이 조정에 장계(狀啓)로 올린 「單使赴燕時」와 「到義州報狀」이 남아 있는데, 이 때문에 한범석이 북경을 다녀온 전후의 과정과 목적은 이들 장계와 「赴燕詩」, 『조선왕조실록』같은 자료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청나라는 강희가 황제로 있었을 때였다. ...
TAG 韓範錫, 「單使赴燕時」, 「到義州報狀」, 喝爾達, 登州, 萊州, 金州, 海賊, Han Beomseok[韓範錫], 1710, pirate, an advance party
무신(武臣) 한범석의 공훈과 업적
신윤호 ( Yun Ho Sin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3권 135~156페이지(총22페이지)
한범석(韓範錫)(1672~1743)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서 본관은 청주, 자는 성뢰이다. 아버지는 어모장군 영세이다. 1695년 별시(別試)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으로서 일생에 걸쳐 많은 업적을 쌓았다. 심양 요동 사이에서 해적이 출몰하여 노략질을 하자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조정에서 한범석을 선발하여 청나라로 파견하였다. 또한 다음 해에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오게 되면서 여러 나라를 두루 경험하게 되었다.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북한별장(北漢別將)이었던 그는 안성군수에 제수되어 안성에서 반란군을 토벌하였다. 당시 안성군수였던 이광적이 반란에 가담했기 때문에 그 공석을 채우는 것이었으나 전국적 규모의 반란이 기획되었다는 것이 조정에 보고된 직후였기 때문에 국가 위기의 상황에서 신임할 수 있는 신하를 보내야 했다. 또한 안성지...
TAG 한범석, 韓範錫, 무신란, 이인좌의 난, 운두성, Han Beomseok, Lee, In Jwa`s Rebellion, Woondu Fortress
조선후기 영남지역 향전(鄕戰)의 분석
김준형 ( Jun Hyeong K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3권 157~200페이지(총44페이지)
향전은 영조(英祖)대 이전부터 기존 사족간의 당파적 대립에서 시작된다. 이런 갈등으로 인해 사족층의 지배질서가 균열을 보이자, 그 틈새를 비집고 신흥세력들이 향권(鄕權)에 참여하면서, 향전이 점차 신·구세력간의 갈등의 모습까지 덧씌워진다. 영남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사족층의 지배질서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지만, 고을에 따라 사족층의 지배질서의 강약이 달랐다. 지배질서가 약한 고을에서는 일찍부터 새로운 세력이 신향(新鄕)으로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컸다. 또 영남을 좌·우도로 나누어 볼 때, 좌도보다는 우도가 향전이 더 심했다. 영남지역 중 우도, 특히 경남 서부지역을 근거지로 하고 있던 남명학파(南冥學派)는 원래 大北의 입장을 취하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침체하면서 대거 南人화해 갔다. 게다가 『남명집(南冥集)』 판본 훼손사건 등 여러 사건을 ...
TAG 향전, 鄕戰, 영남, 嶺南 향전, 기존 사족간의 당파적 대립, 신향, 新鄕, 구향, 舊鄕의 대립, 향안, 鄕案을 둘러싼 대립, 교원, 校院을 둘러싼 대립, 향임, 鄕任을 둘러싼 대립, Hyangjeon, confrontation between local powers, Confrontation between existing nobilities, Conflict between existing power and emerging power, Confrontati
자운(紫雲) 이의한(李宜翰)의 삶과 학문경향
권진호 ( Jin Ho Kwon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3권 201~228페이지(총28페이지)
이 논문은 자운(紫雲) 이의한(李宜翰)(1692~1766)의 삶과 학문경향에 대해 조명한 것이다. 18세기 밀양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의한은 평생 중앙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향촌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처사형(處士型) 학자이다. 그는 벽진장군(碧珍將軍) 이총언(李銃言)(858~938)으로부터 내려오는 학문과 문학, 그리고 절조와 의리를 중시하는 가학적(家學的) 전통을 계승하고, 나아가 영남학통(嶺南學統)의 큰 주류인 갈암(葛庵)-대산(大山)의 학통과 한강(寒岡)-미수(眉數) 학통을 계승한 근기남인(近畿南人)의 학통을 겸섭(兼攝)하여 자기 나름의 학문세계를 추구하였다. 그 결과 그는 젊은 날에 관심을 가졌던 문장학(文章學)에서 50세를 전후하여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학문의 방향을 선회하였다. 그런 가운데 이론 성리학(性理學)에 치중하기보다 일상적...
TAG 이의한, 李宜翰, 학문경향, 처사, 處士, 가학, 家學, 영남학통, 嶺南學統, 근기남인, 近畿南人, 문장학, 文章學, 위기지학, 爲己之學, 성리학, 性理學, 문형, 文衡, 향풍, 鄕風, Uihan Lee, academic inclination, scholar without a public position, family learning, academic tradition in the area of Yeongnam, literary writing, lear
대명사행(對明使行)과 대일사행(對日使行)에 보이는 이단(異端) 논쟁(論爭)의 양상(樣相)
구지현 ( Jea Hyoun Koo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3권 229~256페이지(총28페이지)
조선은 성리학의 왕도정치 실현을 목적으로 세워진 나라였다. 건국 초기부터 고려의 불교식 사회사상을 비판하면서 숭유억불 정책이 시행되었고, 고려의 기반이 되었던 불교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단으로 지목되었으며, 불교 이단성의 비판은 건국초기부터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하는 근거가 되었다. 16세기 성리학이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학문이 유입되었고, 당시 명나라에서 성행하던 양명학도 매우 이른 시기에 조선에 전래되었다. 그런데 이 양명학 역시 주자학의 선명성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이단성이 지적되었는데, 주된 비판의 내용은 불교와의 유사성이었다. 명나라로 사행을 간 조선인은 명나라 학자와의 논쟁을 통해 양명학의 공부 방식이 참선의 방식과 유사함을 지적하였으며, 양명학은 선학(禪學)이라는 명제는 조선 학자들 사이에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17세기 일본의 유학이 아...
TAG 조천록, 양명학, 통신사, 고문사, 고의학, Records of Journey to Peking in Joseon Dynadsty, the teachings of Wang Yangming, envoy to Japan in Joseon Dynadsty, studies of Ancient Rhetoric, the teachings of Jinsai
벽진이씨(碧珍李氏) 내진(來進) 가문(家門)의 형성(形成)과 전개(展開).
( Kweon Soo Heo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2권 1~27페이지(총27페이지)
1500년대 초반에 密陽 來進에 奠居한 星山君 李軾의 후손들인 碧珍李氏 麗 隱亭派 來進 家門은, 500여 년 동안 동족 마을을 이루어 世居하며 士林家門의 표본이 되어 왔다. 이후 계속해서 많은 學者들이 나와 文集을 남겼고, 고을의 鄕校와 書院에 적 극 참여하여 士論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家訓을 만들어 子孫들을 교육하여 조상의 좋은 점을 배우고, 同族間에 는 화목하게 지내고, 나아가 鄕約을 실시하여 鄕風을 先導하는 등 선비정신의 수립과 보급에 誠力을 기울였다. 通國의 著姓인 碧珍李氏 가운데서 麗隱亭派 來進 家門은, 국가민족이 戰亂에 휩싸였을 때, 올바른 지도자인 王建을 도와 나라를 안정시키고 民生을 구출한 시조 碧珍將軍 李言, 詩文과 學問으로 中國에까지 이름을 떨친 山花 李堅幹, 不事二君의 節義를 지킨 麗隱亭 李思之, 反正功臣이면서도 榮達보다는 恬退에 가치를 둔 星山君 李軾...
TAG 來進, 同族村, 家門, 선비정신, 學問 family, scholars, moral tradition, Byugjin Lee family, Yuyeun tribe
동암(東巖) 이이장(李而樟)과 송강(松岡) 이명징(李命徵)의 생애(生涯)와 시세계(詩世界)
윤호진 ( Ho Jin Yun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2권 29~77페이지(총49페이지)
碧珍 李氏 가운데 密陽 來進 門中의 경우 조선 중기 이후 후기에 들어 많 은 학자들이 배출되어 여러 대에 걸쳐 문집이 이어져 나오고 벼슬도 이어졌 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문중이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중간에 東 巖 李而樟과 松岡 李命徵 부자의 효우 돈목의 정신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 이 아니었을까 한다. 동암은 아버지 秉節公 李繼胤으로부터 『小學』의 실천궁행의 정신을 받아 위로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 아래로는 五友堂을 지어 형제와 우애 있게 지 내고 자질의 교육에 힘썼다. 그 결과 중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 어가 재자들과 교유를 확대하는 등 도약의 단계에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함 께 서울에 머물던 셋째 아우 李而相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세상 에 나아가는 일을 단념하였지만 그 후유증으로 일년 만에 자신도 세상을 떠 나게 되었다. 동암...
TAG 東巖, 李而樟, 松岡, 李命徵, 小學, 兵節公, 李繼胤, 五友堂, 一家 契, 孝友, 敦睦, 李而相, 抒情詩, 輓詩, 交遊詩, 交友詩, 唱酬詩, 思 鄕詩 Li Gyeyun, Dongam, Li yijang, Songgang, Li Myungjing, Milyang, Naejin, filial duty, brothership, Sohack, poem, life
죽파(竹坡) 이이정(李而楨)의 생애(生涯)와 학문(學問)
김동석 ( Dong Suk K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2권 79~104페이지(총26페이지)
竹坡 李而楨(1619∼1679)은 밀양 사람이다. 그의 학맥은 金宗直으로부터 시작하여 寒岡 鄭逑, 그리고 부친의 가학과 處士 鄭寔을 거쳐 장인이면서 스 승인 朴壽春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생전에 미수가 탐방하여 만난 적도 있다. 그의 스승인 박수춘은 『소학』의 규범을 따른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곽재우와 함께 火旺城 전투에 참가하였고, 병자호란 때에는 의병을 조직하 여 청군에 대항하려 하였다. 이 같은 스승 박수춘의 행적은 죽파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장형은 성균관에 입학했으나 서울에 온 동생이 갑자기 죽자 벼슬할 생각을 끊고 낙향한다. 그리고 죽파가 41세 되던 해인 1659년에 부친상을 당하였고, 48세인 1666년에 모친상을 겪었다. 밀양에 살고 있던 죽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예림서원 移 轉에 관한 것이다. 조...
TAG 竹坡 李而楨, 朴壽春, 金宗直, 寒岡 鄭逑, 禮林書院, 迂拙齋 朴漢 柱, 松溪 申季誠, 張顯光, 松溪閭表碑, 『家禮節要』, 「鄕約立議序」, 眉「許穆」 Zukpa竹坡, Lee Yi-Jung李而楨, Sungsangun-sik星山君 軾, Kim Jong-jik金宗直, Yerimseowon禮林書院
람회당(覽懷堂) 이이두(李而杜)의 생애(生涯)와 문학(文學)
이영숙 ( Young Suk Lee,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4] 제42권 105~131페이지(총27페이지)
남회당 이이두는 퇴계 사후 寒岡 鄭逑 계열의 학통을 계승하여 퇴계의 학 통이 밀양사림들에게 주류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퇴계 학통의 또 다른 한 맥인 학봉 계열을 계승한 갈암 이현일과는 교우관계로 아들을 갈암에게 배우도록 인도하기도 하였다. 남회당 이이두의 생애는 ‘孝友’로 대표할 수 있는 생애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학』을 통해 법도를 익히고 조금의 어김도 없이 몸소 실천하였다. 부모님이 살아서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봉양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팔십이 다 된 노구로도 조상을 섬기는 예를 어김없이 실천하여 지역의 유림들에게 존 숭의 대상이 되었다. 남회당은 부모에게 뿐만 아니라 형제에 대한 우의 또한 깊어 만년에 친가의 작은 터에 오두막을 짓고 돌아가신 부모님과 형제들을 그리워하여 ‘覽懷堂’이라는 호를 얻게 되었다. 남회당은 시에 뛰...
TAG 남회당, 퇴계학맥, 효우, 소학, 밀양사림, 정구, 이현일 Namhoidang, Toigye`s academic line, filial duty and brotherly love, Sohak, Sarims of Milyang, Jeong Gu, Lee Hyeon-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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