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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AND 간행물명 : 남명학연구579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慶南(경남) 河東(하동)의 儒脈(유맥)과 南冥學(남명학) 傳承(전승)
( Byeong Cheol Jeon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9권 33~71페이지(총39페이지)
경남 하동 지역 유학자의 세기별 분포는 15세기 1명, 16세기 2명, 17세기 7명, 18세기 2명, 19세기 16명, 20세기 초 1명이다. 가장 비율이 높은 시기가 19세기이며, 그 다음이 17세기이다. 경남 지역은 南冥 曺植의 학문을 계승한 南冥學派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남명학파의 성쇠에 따라 하동 지역의 유학자도 비례하여 산출되고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구역별 분포는 총 29명의 유학자 가운데 옥종면이 21명으로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 북천면이 6명, 금남면과 양보면이 각각 1명이다. 이 가운데 옥종면 안계리 출신의 유학자가 11명으로, 옥종면 유학자의 절반이 넘는 비율을 차지하며, 전체 하동군 유학자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러한 통계를 근거해 볼 때, 하동 유학의 중심지는 옥종면이며, 그 중에서...
TAG 慶南 河東, 玉宗面 安溪里, 謙齋 河弘度, 晉陽河氏 司直公派, 蘆沙系列, Gyeongnam Hadong-gun, Okjong-myeon Angye-ri, Gyeomje Ha Hongdo, Jinyanghassi Sajikgongpa, Nosa Affiliation
龍巖書院(용암서원) 운영주체들의 활동과 그 지향에 대한 일고찰 -17세기 초반의 德川書院(덕천서원)ㆍ新山書院(신산서원)과 비교하여-
( Jin Seong Gu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9권 73~108페이지(총36페이지)
이 글에서는 陜川 三嘉에 있었던 龍巖書院 운영주체들의 성격과 활동을 고찰하였는데, 특히 인조반정 이후 그들이 보여주었던 학문적 지향에 관해 주로 논의하였다. 또한 1609년에 공히 사액되었던 德川書院ㆍ新山書院 등 타 남명 제향 서원의 경우와 비교해 봄으로써, 용암서원 운영주체들의 특징을 좀더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용암서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1601년경 재건되었는데, 이때 관여한 인물 다수가 鄭仁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용암서원의 원장ㆍ원임을 맡은 인물로는 정인홍, 文景虎, 李屹, 鄭蘊, 林眞付, 朴絪 등이 있는데, 정온ㆍ임진부ㆍ박인은 인조반정 이후에도 용암서원 내에서 남명 선양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였고, 덕천ㆍ신산서원의 추가 배양 논의에서도 남명 위상의 제고를 위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임진부는 용암서원에서의 강학을 통해 남명 정신을...
TAG 용암서원, 덕천서원, 신산서원, 정인홍, 문경호, 이흘, 정온, 임진부, 박인, 조임도, 하항 배향, 정구 배향, 김우옹 배향, 남명 선양, 인조반정, Yongam-Seowon, 龍巖書院, Deokcheon-Seowon, 德川書院, Sinsan- Seowon, 新山書院, Injo-Coup, 仁祖反正, Nammyung Jo, Sik, 南冥曺植, Nammyung-School, 南冥學派, Jung, In-hong, 鄭仁弘
晦峯 河謙鎭(회봉하겸진)의 「和陶詩(화도시)」와 東坡蘇軾(동파소식)의 「和陶詩(화도시)」比較硏究(비교연구)
( Young Suk Lee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9권 109~146페이지(총38페이지)
회봉과 동파는 몇 백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和陶詩’라는 하나의 시형식으로 遭遇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도연명이라는 인물의 도덕적 청렴함과 인품의 고결함, 은자로서의 삶에 같은 공감대를 느끼며 ‘화도시’를 짓게 되었고, 특히 회봉은 소동파에게도 상당히 경도되어 있었는데 이도 화도시를 짓는 하나의 動因이 되었다. 시대의 간극을 뛰어넘고 ‘화도시’로 만난 이들은 각자 처한 시대와 현실에 고민하고 갈등하며 그 내면적 고뇌들을 시에 加減 없이 담아내었다. 그러므로 ‘화도시’는 그들의 정신적 고뇌의 산물이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의 고민과 갈등을 해소해가는 일종의 정신적 해방구이기도 하였다. 회봉은 화도시에서 유학자로의 자세를 견지하고 도덕적 선을 추구하는 시를 지었으며, 亡國의 좌절과 아픔을 화도시에 담아 내었다. 유학자로서 이상적인 모습을 시에 나타내려한 회봉의 화도시에는 ...
TAG 화도시, 회봉, 동파, 망국, 불우, 교감, 근대한문학, Hwado poetry, 和陶詩, Hoi-bong, 晦峯, Dong-po, 東坡, conflict, agony, modern Chinese literature
遊覽詩(유람시)에 投影(투영)된 智異山(지리산) 認識(인식) 硏究(연구) -天王峰(천왕봉) 遊覽詩(유람시)를 중심으로-
( Jin Wook K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9권 147~173페이지(총27페이지)
본 논문의 목적은 ‘우리는 왜 지리산을 찾는가, 지리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답을 찾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써 조선조 유자들에게 지리산이 어떻게 인식되었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은 첫째, 지리산이 大山으로써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조선조 유자들에게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 국토의 중앙에 우뚝 솟은 웅장한 산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가장 높고 웅장한 산이기에 직접 오르고 싶은 산이었다는 사실이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항상 ‘가장’은 ‘최고’의 의미로 인식되곤 한다. 두 번째로 지리산은 승경을 지닌 빼어난 산으로 인식되었다. 논의의 집중을 위하여 청학동을 제외하고 천왕봉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음에도 지리산은 빼어난 승경을 지닌 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람록과 유람시에 묘사된 천왕봉은 승경을 지닌 명산이다....
TAG 지리산, 두류산, 방장산, 천왕봉, 유람록, 유람시, 탈속 공간, Mt. Jiri, Mt. Duryu, Mt. Bangjang, Cheonwangbong, Cheonghakdong, specific aesthetic
점필재 김종직의 政敎와 講學의 서정 -함양군수 시기를 중심으로-
( Gyung Ju Jung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9권 175~210페이지(총36페이지)
점필재 김종직은 조선초기 사림의 종사이다. 그가 조선조 도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것은 그 자신이 문학과 학문에 있어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 행정을 통하여 인륜 도덕을 숭상하는 사회 기풍을 일으키는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었고, 그 문하에 도학의 이념을 실천하는데 앞장선 훌륭한 후학들을 양성해내었기 때문이다. 점필재의 도학 이념에 입각한 정치 교화와 교육의 실천 모범은 그가 지방관으로 근무하였던 10년 동안에 가장 잘 나타난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에서는 점필재가 함양군수로 봉직하였던 5년 동안의 시문 가운데 정사를 임하는 태도와, 풍교의 대책과 강학 및 유상의 정서를 추적하여, 점필재의 평소 학문 사상과 정치 교육의 성과가 조선전기 도학의 선구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점필재는 함양군수로 부임하면서부터 수시로 관내를 순시하면서 지역의 ...
TAG 김종직, 함양, 도학, 풍교, 강학, 유상, 김굉필, 정여창, Kim-Jongjik, 金宗直, true Confucian, 眞儒, the long-tiled roofs of Hamyang castle, 咸陽城羅閣, Kim-Koengpil, 金宏弼, Jeong-Yeochang, 鄭汝昌, Hamyang, 咸陽
진주의 강역과 하부조직의 시기별 변화
심혜영 ( Hyae Yeong Shim ) , 김준형 ( Jun Hyeong K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9권 211~239페이지(총29페이지)
진주의 역사와 문화의 특징을 언급할 때 흔히 거론되는 것 중에 ‘南冥學派의 본고장’, ‘1862년 농민항쟁의 선구적 지역’, ‘1894년 경남 서부지역 동학농민전쟁의 본거지’라는 표현들이 있다. 이런 상징적 표현은 진주의 강역이 조선시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변해왔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려시대에 진주는 경상도 界首官의 하나로서 경남 서부지역을 통할하는 지방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여러 고을을 통할하였다. 또한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많은 屬邑과 鄕ㆍ所ㆍ部曲 등의 任內를 고을 예하에 두고 있었다. 예종대 이후 진주목의 일부 속읍들이 독립해 나가기는 했지만, 昆明縣 등의 여러 임내가 조선왕조 초기까지 남아 있었다. 조선 건국 후에도 여전히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진주는 여러 번에 걸쳐 그 강역이 축소된다. 14...
TAG 진주 강역, 昆陽郡, 곤양군 독립, 일부 리의 하동 이속, 1906년 진주 강역의 대폭 축소, erritory of Jinju, Independence of Gonyang-gun, from Jinju, Mergence of Few Li`s into Hadong, Large Reduction of the Territory of Jinju in 1906
18세기 후반 文字學(문자학)을 둘러싼 논점들 -正祖(정조)의 文字策(문자책)과 이에 대한 對策(대책)을 중심으로-
장진엽 ( Jin Youp Jang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9권 241~273페이지(총33페이지)
1792년 정조는 『奎章全韻』을 편찬한 후 각신 및 초계문신, 검서관을 포함한 9명의 신하들에게 문자에 관한 策文을 지어 올리게 하였다. 이에 文字策文 9편이 제출되었으며 그 중 현재 남아있는 글은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윤행임, 서영보의 대책이다. 문자책문의 집필배경이 된 『규장전운』의 편집 방향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음과 조선음을 구별하여 각각의 규범음을 밝히는 것, 둘째, 俗音을 제거하고 압운 체계를 개정해 전아한 문사 창작의 지침을 마련하는 것, 셋째, 古音의 확정을 통해 古經을 읽는 데 도움이 되게 했다는 점이다. 6편의 문자책문에서 발견되는 공통의 문제의식들은 위 세 가지 목적에서 배태된 것으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도출된 상이한 견해들이 이 시기 문자학의 논점들을 형성하고 있다. 첫 번째 논점은 글...
TAG 正祖, 文字策, 六書策, 奎章全韻, 文字學, Graphonomy, Joseon, 18th century, Jeongjo, Munjacha다
함안조씨(咸安趙氏)의 함안(咸安) 정착(定着)과 대소헌(大笑軒) 가문(家門)
허권수 ( Kweon Soo Heo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8권 1~40페이지(총40페이지)
咸安을 본고나으로 하여 함안에 세거해 온 咸安趙氏는, 趙鼎,趙丹碩으로 이어지는 上祖가 있지만, 文獻에 의한 고증이 불가능하고, 또 함안과 관계된 기록을 찾기 어렵다. 高麗末 琴隱 趙悅에 이르러서야 함안에 정착한 확실한 기록이 있다. 琴隱으로부터 치더라도 이미 600년이 넘는 오랜 기간을 한 곳에서 살아왔다. 중간에 晋州 靑松 등지로 移居한 일파도 있지만, 대대로 함안에서 최대의 성씨로서 집성촌을 이루고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며 살아 왔다. 琴隱의 高麗王朝에 대한 節義를 지켰고, 漁溪가 生六臣으로서 志節을 지킨 이래로 門聲이 더욱 널리 퍼졌다. 丁酉再亂 때 大笑軒이 순절함에 따라 명문이 되었다. 대소헌의 學問과 忠節은 琴隱 漁溪로 이어지는 가문의 전통과 南冥이나 남명의 제자들로부터 받은 실천위주의 교육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동안 9명의...
TAG Haman Cho family, Haman, Eogae, Dasoheon, Figure, 함안조씨, 咸安趙氏, 함안, 咸安, 어계, 漁溪, 대소헌, 大笑軒, 인물
대소헌(大笑軒) 조종도(趙宗道)의 학문(學問)과 삶의 태도(態度)
이상필 ( Sang Pil Lee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8권 41~60페이지(총20페이지)
大笑軒 趙宗道(1537-1597)는 丁酉再亂 때 黃石山城에서 장렬하게 일생을 마쳤던 분이다. 당시 그 황석산성에서는 대소헌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데도 그곳에서 죽은 사람으로 大笑軒과 存蕭 郭준(1551-1597)만 자주 거론되는 것은 이들이 단순히 縣監이란 벼슬아치였기 때문은 아니다. 이들의 행위는 그 자체로도 기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며, 또한 이들이 황석산성에서 殉死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길이 추앙을 받을 수 있었던, 학문과 행실을 겸비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소헌의 생애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그의 학문과 삶의 태도에 대해서 고찰한 결과,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는 합의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첫째, 대소헌은 총명한 두뇌를 타고난데다. 鄭斗ㆍ盧禎ㆍ曹植 등 당대 경상우도에서 가장 이름난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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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헌(大笑軒) 조종도(趙宗道)의 성학과정(成學過程)과 의리정신(義理精神)
강동욱 ( Dong Uk Kang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8권 61~84페이지(총24페이지)
忠毅公 大笑軒 趙宗道 (1537~1597)는 남명 선생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招諭使 金誠一 (1538~1593)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고, 1597년 丁酉再亂 때 안음현감 郭준(1551~1597)과 함양 黃石山城에서 왜장 加藤淸正이 인솔한 적군과 싸우다 장렬히 순국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소헌은 어릴 때부터 家學 또는 지역의 先輩 학자들로부터 익힌 공부를 비롯해 본격적으로 남명에게서 배운 학문의 지결을 몸소 실천하였다. 곧 義理精神을 근간으로 한 그의 학문적 바탕이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초개같이 버려 仁을 이룰 수 있었다고 본다. 대소헌은 평소 국가에 재난이 있으면 관직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선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평소 배운 대로 실행하여 하늘의 떳떳함을 지켜야 한다...
TAG 남명, 선비, 순국, 임진왜란, 경의, 敬義, 의리정신, 강우, 江右, 지역, Nammyung, heroic, loyalty spirit, Seonbi, sacri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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