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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AND 간행물명 : 남명학연구579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대소헌(大笑軒) 조종도(趙宗道) 시문(詩文) 연구의 두 논점 -유덕자필유언론(有德者必有言論)과- 연가지전정론(臠可知全鼎論)을 중심으로-
윤호진 ( Ho Jin Yun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8권 85~123페이지(총39페이지)
이 글은 大笑軒 趙宗道의 문학에 대한 생각과 문학작품 특히 시세계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대소헌은 생원시에 합격한 뒤 安奇到察訪에 천거되었고, 그곳에 있으면서 退溪 李滉의 제자인 柳城)ㆍ金誠一ㆍ權好文 등과 교유하였다, 임진란이 일어나자 적극적으로 의병활동을 하였고, 정유재란 때 黃石山城에서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는 호에 드러난 바와 같이 매우 호방하였으며, 성품과 행실이 고상하고 우뚝하였다. 그래서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만 아니라, 친척들에게 어질게 대하고, 벗들에게는 진심으로 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성품과 행실은 문학에 그대로 나타났는데, 문학에 대하여는 매우 실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學校」라는 일종의 策文에서, 학교는 문학을 詞章을 외워 科擧에 합격하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선현의 덕을 함양하여 자신을 ...
TAG Jo Jong Do, Dae So Heon, “Ladies and gentlemen must use great words” [유덕자, 有德者,필유언, 必有言], the personality of someone[위인, 爲人], composing the poetry[위시, 爲詩], “the personality of someone and composing the poetry are same”, “After tasting a slice of meat, it
“촉석루중삼장사(矗石樓中三壯士)” 시(詩)의 사적(事蹟)에 관하여
김해영 ( Hae Young K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8권 125~164페이지(총40페이지)
이 글은 임진년(1592) 오월 진주성 촉석루에서 김성일, 조종도, 이로(혹은 곽재우)가 남강에 투신하여 죽음을 결행하려 했던 사건과 관련되어 지어진 시에 관해 언급한 여러 기록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삼장사에 관한 사적을 기록한 글로는 「從遊諸賢錄」(성여신 찬), 「鶴擧言行錄」(최현 찬), 「矗石樓詩懸板」(오숙 찬), 「大笑軒事蹟略閭表碑」(찬자 미상), 「矗石詩樓註」(김응조 찬), 「大笑軒行狀」(한몽삼 찬), 「讀祠祀三壯士疏」(하세웅 찬), 「鶴擧年譜」(이재 찬), 「松巖李先生行狀」(조선적 찬) 정도가 『용사일기』가 印刊되기 이전의 기록으로 살펴진다. 이들 자료에는 대부분 삼장사시의 지은이를 김성일로 기록하고 있으나, 시의 작자를 다른 사람인 것으로 기술한 경우도 있고, 남강에 투신하여 죽음을 결행하려 했던 사실을 언급하면서도 시를 지었다는 사실...
TAG 촉석루중삼장사, 삼장사, 김성일, 조종도, 이로, 이상정, 곽재우, 용사일기, 촉석루시사적, Three Brave Scholars on Chokseongnu Pavilion, Three Brave Scholars, Kim Seongil, Jo Jong Do, Lee Ro, Gwak Jae Woo, Lee Sang Jeong, 『1592-93 Diary』, 『Story about Choseongnu Pavilion Poem』
대소헌 조종도의 인물 현상에 대하여
정경주 ( Kyeong Ju Jung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8권 165~202페이지(총38페이지)
이 글은 조선중기의 임진왜란 초기에 경상우도의 의병 봉기에 크게 기여하고, 정유재란을 당하여 고립된 황석산성에서 전직 군수로서의 직분을 지켜 순절하였던 대소헌 조종도가 한국의 인물사 내지 문화사에 있어서 가지는 의의를 점검하고, 역사 문화 인물로서 대소헌 조종도의 위상을 역대 문헌에 수록된 그 인물 형상의 특징을 통하여 개괄하고자 집질되었다. 본론에서는 먼저 대소헌과 관련된 문헌을 사망 직후의 에도를 표한 輓章과 祭文, 진지나 가문 기록으로서의 碑誌와 傳狀, 국가나 사림의 공식 추모 문자로서의 褒贈 追崇의 문자 등 세 층위로 나누어. 해당 인물에 대한 사적 애도와 공적 추모의 전개 양상을 점검하고, 다음으로 이들 문헌에 빈번하게 나타내는 인물 형상의 특징적인 징표를 大笑子와 烈丈夫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요약하고, 그 인물 형상의 성립 정착 과정을 추적하는 한...
TAG Daesoheon, Jojongdo, the man with loud laughter, Passionate heroic big man, the battle of the castle in Hwangseokasn, Nammyeong school, 대소헌, 大笑軒, 조종도, 趙宗道,대소자, 大笑子, 소광, 笑狂, 렬장부, 烈丈夫, 황석쌍충, 黃石雙忠
西岡(서강) 李中厚(이중후)의 生涯(생애)와 詩世界(시세계)
( Ho Jin Yun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7권 1~40페이지(총40페이지)
이 글은 의령지역을 대표하는 학자 西岡李中厚의 생애와 시세계를 다룬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張福樞의 문하에서 학문을 하였으나 중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공부를 하지 못하고 건강의 회복에 힘을썼다. 그는 요양에 집중하는 동안에 다른 한편으로는 근검절약하여 가산을 모았고, 부친의 유명에 따라 종족이 돈목하게 지낼 방책으로 別莊을 지어 집안의 大小事를 의논하고 도왔다. 이렇게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집안을 일으키는 데에 평생의 심력을 다한 그에게 자제들이 별장 곁에 西岡精舍를 지어주었다. 그는 만년에 이곳에서 그간 하지 못한 공부를 다시 하면서 집안을 다스렸는데,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자제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가업을 일으켜주기를 바랐다. 그는 이처럼 질병과 가산을 모으는 일에 힘을 썼지만 선비로서의 도리는 잊지 않아 인근의 지인들이 세상을 떠났을...
TAG 西岡 李中厚, 張福樞, 別莊, 西岡精舍, 深齋 曺兢燮, 三來, 輓詩, 次韻詩, Lee Jeong hu, life, poetry, Lee Hyun Ki, Jang bock Choo, Tue Gue, Nam Myung, Cho Kung Sheop, elegies, ballads
覺齋(각재) 權參鉉(권삼현)의 生涯(생애)와 學問(학문)
( Kweon Soo Heo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7권 41~71페이지(총31페이지)
覺齋 權參鉉은, 평생을 宜寧에서 초야에 묻혀 학자로서 일생을 보냈다. 선조인 霜癌의 志節을 물려받고, 어린 나이에 淵齋 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栗谷, 尤庵의 학통을 계승한 학자였다. 그는 격변하는 시대조류 속에서 전통 儒學者의 자세를 견지하며 道學의 연구와 보전에 힘썼고, 제자 교육에 誠力을 다했다. 그리고 평생 많은 漢詩文을 저술하여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여 남겼다. 신학문의 보급과 확대 속에서 유학의 보전과 전승에 힘을 다 쏟았지만, 이미 유학은 시대의 主潮가 아니라 국가나 대중으로부터 관심 밖으로 말려나는 상황이었으므로, 시대와 인심은 그의 뜻과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좌절하기 않고 최후의 일각까지도 자신의 召命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고 바른 길을 추구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수준 높은 저술과 많은 제자들을 길러 전통유학자로서 마지막 세대를 의...
TAG 覺齋 權參鉉, 유학자, 學問, 전통. 救世, Kakjae, scholar, incision, succeed, right way
退休(퇴휴) 姜獻之(강헌지)의 生涯(생애)와 志趣(지취)
문정우 ( Jung Woo Moon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7권 73~96페이지(총24페이지)
退休 姜獻之는 肅宗 대에 仕宦한 宜寧의 인물이다. 출처의 대절에 돈독하여 당시 권력 장악의 다툼 속에서 결연히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당호를 退休라 짓고 「漁樵問答」을 지어 자신의 뜻을 표출하였다. 본고는 퇴휴가 혼란한 정국에서 居官하면서도 禍를 입지 않고 온전하게 생애를 마칠 수 있었던 점에 착안하여 그의 남다른 지취에 주목하였다. 그 핵심 요인은 바로 퇴휴가 자신의 호로 삼은 退休라는 의미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퇴휴가 忽忽히 퇴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출사하여 유자로서의 포부는 웅대하였으나 功績과 職位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언제든 퇴휴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인생을 관조하면서 삶의 한 지표였던 퇴휴의 의미가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러날 때를 알고 퇴처할 수 있었다. 퇴휴는 어버이를 天地와 같은 존재로 여기며 부모님께 事親의 예...
TAG 退休 姜獻之, 宜寧, 漁樵問答, 知止, 閑居, 靜慮, 樂志, ehyu Gang-heonji, Uiryeong, Eocho-mundap, understanding stop and cease, quiet living, meditation, self-possessed living
立巖(입암) 南廷瑀(남정우)의 交遊關係(교유관계)와 學問世界(학문세계)
김봉곤 ( Bong Gon K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7권 97~125페이지(총29페이지)
이 글은 한말과 일제시대에 주리론과 위정척사사상을 고수하였던 의령의 입암 남정우의 교유관계와 학문세계를 분석한 것이다. 입암은 영남의 盧沙 학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서 寒洲 학파의 인물과 교유가 깊었기 때문에, 한말 유학계를 대표하는 두 학파의 상호교류나 학설의 발전을 살피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입암은 노사학맥에서는 노백헌 정재규, 農山 鄭冕圭, 한주 학맥에서는 면宇 郭鍾錫, 弘窩 李斗勳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에 그의 성리설은 노사학설과 한주학설이 종합되어 나타난다. 그는 노백헌과 농산의 학설을 한주의 학설과 동일한 心卽理와 理體理用으로 이해하였다. 한주의 심즉리설은 본래 노사의 리주재와 이일분수의 관점을 보다 발전시킨 것이기 때문에 노백헌이 한주의 설을 수용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입암은 허령도 아예 리로 이해하여 노백헌의 심설에서 논란이 ...
TAG 立巖, 입암, 嶺南, 영남, 盧沙, 노사, 寒洲, 한주, 老栢軒, 노백헌, 農山, 농산, 면우, 夷川, 이천, 心卽理, 심즉리, 虛靈, 허령, , , 衛正斥邪, 위정척사, Ipahm, Yeongnam, Nohsa, Hanju, Nongsan, Nobaekheon, Myeonwu, Yicheon, Xin-ji-ri, Heoryeong, Jing, Wi-jeong-cheok-sa
弘堂(홍당) 李秉灝(이병호)의 學問(학문)과 그 時代的(시대적) 意義(의의)
( Dong Suk K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7권 127~155페이지(총29페이지)
弘堂 李秉灝(1892∼1964)은 宜寧 中橋里에서 태어났으며 저술로 『弘堂文集』을 남겼다. 홍당은 성품이 方正하고 流俗에 휩쓸리지 않는 耿介한 성품을 가졌다고 한다. 학문이 귀중하다는 것을 안 것은 免宇 郭鍾錫 선생과 艾山 鄭載奎을 만나고 나서다. 한편 1910년 경술국치 이후 深齋先生(1873∼1933)이 은둔하여 정산서당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을 즈음, 23세가 된 弘堂은 1913[癸丑]년 심재선생을 알현하고 다음 해인 1914년 鼎山書堂에서 수학한다. 이곳에서 鄕約으로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講和會議가 1919년∼1920년 사이에 진행되었을 때, 유림측에서는 1919년 3·1운동 후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작성하여 보내려고 하였던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에 관련된 免宇 같은 분은 심재와 긴밀한 관계였는데, 옥고를 치르고 이...
TAG 弘堂, 李秉灝, 宜寧, 深齋, 曺兢燮, 免宇, 芝峯, 李秉喆, 李洪錫, Hongdang, ngdangmonjip, Uiryeong-gun, JiBong, MunWoo, HyeBong, SimZe
栗山(율산) 田相武(전상무)의 詩世界(시세계)에 대한 一考察(일고찰)
( Dong Young Cho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7권 157~186페이지(총30페이지)
栗山 田相武는 舊韓末 宜寧에서 살았던 인물로, 江右地域을 대표하는 儒學者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激變하는 시대를 살면서 유학자로서의 自存意識과 正體性을 잃지 않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이 논문은 그의 詩世界를 통하여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과 학문적 성향을 탐구해 보고자 하였다. 이는 특정한 지역의 인물을 발굴하여 조명함으로써 학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둔 때문이다. 그 결과 日本이 懷柔策의 일환으로 집요하게 제시한 ‘恩賜金’을 栗山이 끝까지 거부하였다는 것과 그 편지를 총독부에 보내서 排日意識을 提高하여 자존의식을 고취시켰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不戶籍, 不墓籍을 주장하여 일본의 政策에 抗拒하는 글을 남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獨立宣言書’의 33인에 참여하여 국가를 위한 救國의 念願을 펼치기도 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TAG 宜寧, 江右地域, 自存意識, 排日意識, 日本恩賜金, 不戶籍, 不墓籍, Uiryeong, the Nakdong river`s Western area, self-esteem, anti-Japanese ideology, ilbon-eunsageum, Japan`s royal bounty, refusal of family-registration, refusal of grave-registration
仁祖反正(인조반정) 直後(직후) 來庵(내암) 鄭仁弘(정인홍) 門人(문인)들의 不安(부안) 要因(요인)과 그 對應(대응)
( Jin Seong Gu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2013] 제37권 187~213페이지(총27페이지)
이 글은 인조반정 직후 내암 정인홍 문인들의 불안 요인과 그에 대한 대응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정인홍의 문인들은 광해군 정권 시절 조야에서 폭넓게 활동하다가,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대거 숙청되어 이후로 막연한 불안감이 정인홍 문인들 사이에서 형성되었다고 판단된다. 또한 이들은 반정에 불복하는 세력을 형성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발각되어 대규모의 옥사가 일어난다. 이로써 정인홍 문인들의 불안은 더욱 가중 되었고, 불안 요인 또한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 정인홍 문인들의 일차적인 불안 요인은 자신과 스승 정인홍과의 관련성이었다. 박건갑은 정인홍의 회퇴변척을 옹호하는 소를 올린 적이 있는데, 1624년 10월 옥사에 연루된 박건갑 3부자(박규·박구)의 추국 기록에는 첫머리부터 ‘정인홍의 여얼’이라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으며, 박건갑은 이에 대한 해명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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