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한 ( Edward T. Chang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2019] 제35권 127~160페이지(총34페이지)
이 논문은 3.1운동 관련 한인사회에 대한 선행연구를 보충하는 차원에서 첫째, 미국에서 미주한인들의 비공식 법적 위치가 공인된 헤멧 밸리 사건(1913)을 재조명하여 미주한인들이 미국에서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점을 지적하고, 둘째, 3.1운동 이후 전개된 미주한인들의 무장 독립운동사를 서술보고, 셋째, 3.1운동이후 미주 한인 여성들이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한 사실을 강조하고, 넷째, 미국 언론이 보도한 3.1운동 소식 내용의 동향을 소개하고 분석한다.
특히 헤멧 밸리 사건은 미국 거주 한인들이 비공식적으로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법적 지위를 부여받음으로써 미주 한인들이 일본 식민국민이 아닌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사건이었다. 만주나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일본 군대와 경찰의 탄압을...
남미지역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문화지형은 기존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의 해외 이주/이동과 차별화된다. 한국전쟁기의 반공포로와 1960년대/70년대 한국의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추진된 코리안의 이주/이민이 남미지역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른바 박정희 군사정권은 1962년 ‘해외이주법’을 제정하고 남미지역의 농업이민을 비롯해 독일로의 광부/간호사 파견, 베트남전쟁의 파병 등을 연쇄적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따라서 남미지역 코리안들의 이민역사와 문화 정체성, 고향(조국) 표상/기억이라고 할 때 한국의 굴절된 근현대사를 비롯해 반공포로의 유폐된 디아스포라적 삶, 조국의 근대화/산업화와 연동된 이민자/이민사회의 자화상을 천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디아스포라의 구심력과 원심력이라는 관점에서 경계의식과 트랜스네이션, 혼종성과 글로컬리즘...
남미지역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문화지형은 기존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의 해외 이주/이동과 차별화된다. 한국전쟁기의 반공포로와 1960년대/70년대 한국의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추진된 코리안의 이주/이민이 남미지역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른바 박정희 군사정권은 1962년 ‘해외이주법’을 제정하고 남미지역의 농업이민을 비롯해 독일로의 광부/간호사 파견, 베트남전쟁의 파병 등을 연쇄적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따라서 남미지역 코리안들의 이민역사와 문화 정체성, 고향(조국) 표상/기억이라고 할 때 한국의 굴절된 근현대사를 비롯해 반공포로의 유폐된 디아스포라적 삶, 조국의 근대화/산업화와 연동된 이민자/이민사회의 자화상을 천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디아스포라의 구심력과 원심력이라는 관점에서 경계의식과 트랜스네이션, 혼종성과 글로컬리즘...
본 논문의 목적은 3.1운동 이후 일본에서 ‘조선의 주체성’을 둘러싼 담론이 어떻게 형성되
어 있었는지 밝히는 데 있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1차대전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나타난 사회
담론, 즉 ‘사회의 발견’이라 불리는 현상에 주목하여 그것이 ‘식민정책학’과 연계된 사상적 맥
락을 밝혔다. 그리고 그 사례로서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의 ‘자주주의’를 분석했다. 3
장에서는 문화정치의 콘텍스트를 구성한 맥락으로서 ‘자치주의’와 ‘내지연장주의’를 분석했다.
2장에서 밝힌 맥락은 자치주의 담론 속에 녹아들었는데, 이를 자주주의에서 추출한 ‘독립된 주
체와 협동의 논리’가 재현되는 양상을 통해 밝혔다. 한편 내지연장주의에 관해서는 흔히 ‘동화
주의’와 동의어로 이해되지만, 본고에서는 내지연장주의 담론이 갖는 ‘동화주의 비판’의 맥락에
주목하여 그 핵심...
야다요이치는 일제 통치하 대만에서 토목기사로 농업용수와 대만 최대의 농수시설인 Chianan tatsun (嘉南大圳)과 같은 댐 개발에 종사한 인물이다. 1980년대에 들어 서서히 그의 업적이 알려지게 되면서 이등휘(Lee Teng-hui, 李登輝) 총통을 비롯 마잉주(Ma Ying-jeou, 馬英九) 총통 등 정치적인 거물들도 그의 공적에 대한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야다 요이치를 모델로 한 TV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Chianan tatsun의 아버지” 야다요이치 『水色嘉南: 야마 요치치전 : 「嘉南大圳의 아버지」八田與一與烏山頭水庫的故事』(2008年放映) “밧텐라이!! : 남쪽 섬 물이야기”(2009년 상영)와 웨이다세(Wei Te-sheng, 魏徳聖)가 각본과 프로듀스한『KANO』...
김현희 ( Hyun-hee Kim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2019] 제34권 87~107페이지(총21페이지)
호조키 라는 서명(書名)과 작자가 『호조키』말미에 「상문렌인」(桑門の蓮胤)이라고 기술한 서명(署名)은 『호조키』를 읽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열쇠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호조키』의 서명(署名)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렌인」위에 「상문」이라는 말이 쓰여 있는 점이다. 「상문」은 범어 sarumana(사문;沙門)로서 불도에 정진하는 출가자를 의미한다. 출가자가 법명 위에 일부러 이런 종류의 말을 붙여서 쓸 때에는 불제자(佛弟子)라고 하는 입장을 명확히 해서 무언가를 주장하는 경우에 한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개인적인 편지나 간단한 수필문 등에 그것을 기술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호조키 의 말미에 있는 서명(署名)이 가지는 의미에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다. 이 점 또한 『호조키』를 접하는 데 있어서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호조키 는 본질적으로 말하면 「카...
일본의 인구는 2008년의 12,808만명을 기점으로 감소의 길로 들어섰다. 이러한 상황속에서2014년 9월 3일에 발족된 제2차 아베내각(개조)이 최우선 과제로 언급한 정책이 바로 ‘지방창생’이며,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서 거론되어진 것이 이른바 ‘마쓰다 레포트(‘마쓰다 쇼크’라고도불린다.)’이다. 이에 따르면, 2040년까지 인구재생생산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젊은여성(만20세에서 만39세의 여성인구)이 50%이상 감소하는 시정촌은 약1,800자치단체 중 896자치단체에 달할것으로 추계하고, 이들을 ‘소멸가능성도시’라고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소멸가능성도시로 지명된 896자치단체는 물론 일본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이를 ‘지방소멸론’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시작된 지방소멸론은 한국에서도 소개되어, 일본과 같은 방법으로 인구시뮬레이션이 이루...
이정선 ( Lee Jeong-seon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2018] 제33권 29~61페이지(총33페이지)
본고는 조선을 중심에 놓고 공통법의 제정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이법지역과 본적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사람을 구별하는 일본의 제국 법제 형성 과정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분명해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통법에서 말하는 ‘당사자가 속한 지역’이란 호적의 소재지인 본적지를 말하며, 본적지가 내지, 조선, 대만 가운데 어느 지역에 속하는지에 따라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이 구별되었다. 둘째, 이러한 공통법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법률로서, 내지와 식민지들이 이법지역을 이루는 국가 시스템을 뒷받침했다. 셋째, 제국 본토인 내지와 식민지 조선 사이에는 명백한 위계가 존재했다. 헌법이 온전히 시행되는 내지라는 공간은 중국인과 식민지민의 이주를 억제함으로써 일본인 및 문명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속지적 통치를 표방할 수 있었고, 이미 유입된 이들을 차등 대우하는 ...
본고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체결을 앞둔 무렵 오키나와측에서 표출된 일본 ‘복귀’에 대한정치적 지향성의 원인으로서 동시대적인 요인을 강조한다. ‘복귀’를 지지한 오키나와 출신의지식인들은 태평양전쟁 전의 기억과 경험에 근거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의견을 형성하였다. 예를 들면 나카요시 료코(仲吉良光)는 태평양 전쟁 전의 일본과 오키나와의 역사적·문화적 근접성을 이유로 오키나와의 일본으로의 복귀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동시에 태평양전쟁 전부터 공산주의자들은 처음에는 공산주의의 교의에 근거하여 ‘분리독립·재통합’을 주장하였으나, 전후 동아시아에서 냉전대립에 직면하게 되자 ‘분리독립없은 통합론’으로 노선을 변경하였다. 한편 오키나와의 일반인에 의한 일본으로의 ‘복귀’에 대한 지지는 동시대적인 요인을 통해 보다 잘 설명되어질 수 있다. 즉, GHQ점령 하 일본에서...
오늘날 일본 국가에 의해 중요무형문화재로써 지정된 류큐음악과 류큐무용, 그리고 구미오도리(組踊)는 그 역사를 류큐왕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여겨지며 류큐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예능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그 내실은 일본의 메이지시기에 오키나와가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전통의 창출’ 통해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하다.
본고에서는 메이지기 고전예능을 둘러싼 예능의 ‘전승자’의 변화에 주목하여, 류큐고전예능을 둘러싼 근대사를 류큐처분, 그리고 태평양전쟁이라는 두가지 커다란 전환점을 축으로 고찰하였다. 구체적으로는 메이지기 폐번치현 이후 류큐고전예능의 대중화와 ‘예능가문’의 아이덴터티의 형성과정, 고전예능의 ‘전승자’로써 여성무용가의 탄생에 대해 살펴보고, 전후에는 유파의 등장과 사범면허제도를 축으로 한 새로운 계승을 위한 시스템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고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