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곤 ( Bong Gon Kim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2016] 제52권 335~377페이지(총43페이지)
영남과 호남사이에는 18,9세기 경 진주-하동-구례-곡성을 잇는 섬진강 유역의 인구와 경제력의 성장으로 많은 사족들이 성장하였고, 서로간에 자주 왕래하였다. 이러한 교류 결과 영남지역에 기정진의 문인들이 다수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들은 당시까지 영남 일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16세기 중엽의 남명 조식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선양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노사학파에서는 시비분별을 통하여 외적인 사특함을 막고, 경을 통해 시종여일 천리를 마음속에 보존하려고하였기 때문에 경을 통해 심을 활성화시키려는 조식의 경 사상에 깊이 경도되었던 것이다. 이에 노사학파인 정재규, 최숙민, 김현옥 등은 허유가 지은 신명사도명혹문(神明舍圖銘或問) 에 대해 신명사도명의 위치나 내용에 대해 검토하고 남명의 사상이 경의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정재규는 ‘국군사사직(國...
김상기 ( Sang Ki Kim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2016] 제52권 379~408페이지(총30페이지)
유진하는 유중교한테 수학한 화서학파 유학자이다. 그는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나 경기도 광주와 충청도 진천을 거쳐 서산의 거성리 추계마을에 정착하였다. 1896년에는 화서학파 동문인 유인석이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정인설을 추천하여 대장 종사로 활약하게 하였다. 그는 의병에 직접 참전하지는 못했으나 서산에서 서당을 차리고 인근의 유학자들과 교유하면서 향약을 중수하는 등 향풍의 진작을 위하여 힘썼다. 1905년에는 최익현이 노성의 궐리사에서 강회를 개최함에 시국의 대처 방안을 제시하였으며, 그를 대신하여 격문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1906년에는 당진의 의령남씨들이 설립한 도호의숙(桃湖義塾)에 강장(講長)으로 초빙되어 척사론에 입각한 강의를 했다. 그는 송시열의 존주론에 입각한 위정척사론에 철저하였다. 그는 단발령으로 인하여 중화의 맥이 끊어졌다면서 반대의 뜻을...
이동환 ( Lee Dong Hwan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2015] 제51권 1~51페이지(총51페이지)
17세기 주자학 교조주의의 억압체제가 16세기 조광조의 도학 근본주의, 이황의 주자학 절대주의의 추동으로 사상의 일원화, 단일화가 진행된 결과라는 가설을 가지고, 이러한 대국(大局)의 전개에 사상의 일정한다원성을 추구하여 특히 이황에 저항한 노수신의 사상사적인 위상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조광조의 소격서 혁파는 이단사상에 대한 숙정(肅正)을 실질적으로 한 것이지만, 그래도 그는 정주학(程朱學)을 중심으로 그 외곽의 기학(氣學), 상산학을 도학으로 포괄하여 그 범위 안에서는 사상적 자유 재량(裁量)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황의 주자학 절대주의에 이르면 주자 이외의 여타 사상에 대한 통제는 한층 가열(苛烈)하였다. 그는 위정척사적인 위도의식(衛道意識)으로 주자학 이외에는 모두 좌도(左道) 이단시하여 노장은 말할 것도 없고, 조광조 시대에 허용되었던 기학상산학,...
신향림 ( Shin Hyang Rim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2015] 제51권 53~93페이지(총41페이지)
이 논문은 소재 노수신(盧守愼)의 철리시(哲理詩)와 그의 대표적인 산문 저작인 『집중설(執中說)』을 중심으로 소재의 미발설(未發說)의 특징을 살피고, 이것을 주희(朱熹), 왕수인(王守仁),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미발설과 비교한 것이다. 소재는 40대 중반까지 독서궁리 공부를 통하여 인생의 시련을 극복하고 이상적인 인격에 도달하려는 강렬한 지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40대 후반부터는 배움을 구하러 진도로 찾아온 후학들에게 책이나스승이 아닌 마음에서 천리를 찾으라고 가르쳤고, 「집중설」과 여러 철리시에서 미발의 마음에서 직접 천리(天理) 본성(本性)을 볼 수 있고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주희는 젊은 날 스승인 이동의 가르침에 따라 미발의 마음에서 천리를 체인하는 공부를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그는 마음에서 직접천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
최진덕 ( Choi Jin Duk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2015] 제51권 95~140페이지(총46페이지)
노수신은 16세기 당시부터 양명학을 한다고 비판받아 왔다. 오늘날에도 신향림은 그를 “최초의 양명학자”로 지목한다. 하지만 노수신의 산문은 매우 주자학적이다. 그의 시에서 간혹 양명학적 소신이 드러날뿐이다. 간혹 보이는 그의 양명학은 그의 주자학과 모순이라 보기 어렵다. 주자학적 본체론의 깊이에는 “이는 하나(理一)”라는 진리가 있다. 이 진리는 왕양명의 만물일체설과 다르지 않다. 주자학적 본체론의 깊은 곳에 양명학이 숨어있다. 그러므로 모든 주자학자는 잠재적으로 양명학자일 수 있다. 노수신은 주자학적 본체론의 깊이에 침잠함으로써 양명학과 만난다. 그의 『인심도심변』은 주희의 인심도심 해석이 주자학적 본체론과 공부론의 체와 용을 겸비하지 못하고 용의 차원에 그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16자 전심결을 주자학적으로 완전하게 해석한다. 『중용장구서』 에서의 주...
소재 노수신(盧守愼)의 숙흥야매잠해(夙興夜寐箴解) 는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에 대한 상세한 주해(註解)이다. 「숙흥야매잠」은 하루의 공부 방법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이상적인 방식으로 묘사하고 규정하여 둔 글로서, 기본적으로 주자학(朱子學)을 그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중국 절강성(浙江省) 출신인 남당(南塘) 진백(陳栢)에 의해 창작되고 이후 주로 그 지역 출신의 학인(學人)들에 의해 중시된 지역적 특색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른바 금화주자학(金華朱子學)의 형성 및 전개와 관계가 깊은 문헌이다. 소재는 그것을 정단례(程端禮)의 『독서분년일정(讀書分年日程)』을 통해 접한 것으로 추정되며, 퇴계(退溪) 및 하서(河西)와 서신 교환에 의한 대화를 통해 주해 작업을 완성하였다. 퇴계가 『성학십도(聖學十圖)』를 편찬하면서 그 내용을 반영한...
정호훈 ( Jeong Ho Hun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2015] 제51권 185~239페이지(총55페이지)
노수신의 『대학집록(大學集錄)』은 노수신 개인의 사상을 담고 있는책이자 16세기 후반 조선 사상계의 성과와 과제를 담고 있는 자료이다. 이 책에는 중국과 조선에서 나온, 『대학장구』와는 시각을 달리하여 『대학』을 이해하는 주요한 글들이 실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대학』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러 정보를 모아 둔 지식의 보고였다. 『대학집록』은 간행된 이후 조선에서 널리 유통되지 못했다. 육왕학(陸王學)에 대한 비판과 금제가 심해지면서 자유로운 유포가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이 상황에서 『대학집록』은 『개정대학(改正大學)』, 『대학집람(大學輯覽)』의 두 형태로 변신하며 조선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개정대학』은 『대학집록』에 실려 있던 왕수인의 글, 권근의 글,『대학보유』에 대한 노수신의 발문을 제외한 나머지 자료로 만든 축소본으로, 이언적과 ...
조성을 ( Cho Sung Eul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2015] 제51권 241~293페이지(총53페이지)
노수신의 생애는 네시기로 구분된다. 첫째 시기인 중종 말~명종 초기에는 매우 득의하여 신진기예로서 사림파의 입장에서 이기 등을 탄핵하였다. 둘째, 을사사화로 파직 당하고 순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다시 진도에 유배되어 20년간 유배 생활을 하게 되는 시기이며 이 때 학문이 대성하였다. 셋째, 선조 즉위 후 선조 5년까지의 시기로서 다시 관직에 나와 당시 선조 대 전배사림과 개혁, 특히 척신 정치의 청산 문제에 대하여 대경장의 입장에서 뜻을 같이 하는 시기이다. 이 때 전배사림과 구신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이 갈등의 조정을 위해 노력하였다. 넷째, 선조6년 우의정에 임명된 이후 정여립 옥사 직후 타계하기까지의 시기이다. 노수신은 강력한 개혁 의지를 갖고 국왕 선조에게 건의에도 하였으나 국왕은 전혀 개혁할 마음이 없었다. 이 때 사림이 전배...
강대현 ( Kang Dae Hyun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2015] 제51권 295~328페이지(총34페이지)
고대일본의 오음(吳音) 한음(漢音)은 중국 한자음의 발음양상에 대한 개념적 정의이다. 이러한 오음의 일본전파에 큰 영향을 준 고대한국인이 일본의 사료와 실담장에 등장하고 있다. 그들이 백제의 비구니법명과 신라인 김예신이다. 이들 중 김예신은 불교경전과 관련된 오음전문가로서, 명경 관련 음박사이면서 한음 전문가인 표신공[원진경]과 함께 일본에서 크게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현재까지 김예신의 행적에 관한 뚜렷한 기록을 찾아볼 수는 없으나, 그에 관한 사료 및 실담장 등 선행의 연구를 살펴보면, 일본 초기한자음의 오음이라고 하면 김예신, 일본 한자음의 한음이라고 하면 표신공이라는 고대일본 한자음의 대표적 인물로 인식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일본의 실담학이 형성되기 이전 한 중 일 삼국의 관계성 안에서, 인도불전이 중국으로 전해지고 고대한국을 통하여 불...
정도원 ( Jeong Do Won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2015] 제51권 329~364페이지(총36페이지)
본고는 사계와 우암의 주자학 이해가 가지는 특성을, 퇴계와 율곡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가늠하고, 이것이 학단 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본고는 특히 심학의 측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데, 퇴계와 율곡의 갈림이 바로 이 심학 혹은 도학에 뿌리를 두고 있고, 조선후기사상사가 퇴율 심학에 대한 당 시대의 독해 방식과 그에 담긴 역사의식을 분석함으로써 일관되게 설명될 수 있기때문이다. 사회 경제적 맥락에서의 사상 검토 역시 이러한 토대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고의 기본 관점이다. 율곡이나 고봉은 퇴계의 이학이 “한 마음, 두 근원”을 상정한다고 비판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발이 아니라 “호발(互發)”이었다. 그러나 율곡의 적통을 자처하는 사계-우암은 호발이 아닌 “이발(理發)”을 문제 삼는다. 사계-우암은 특히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