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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701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허응 보우의 불교사적 위상 재검토
손성필 ( Seong Phil Sohn )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2014] 제46권 83~123페이지(총41페이지)
허응 보우(虛應普雨)는 조선 명종대에 불교를 중흥하고자 한 승려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승정(僧政) 활동과 불교 사상은 각각 이례적이고 독립적인 것으로 평가되어, 불교사적 위상이 제대로 평가받아 오지 못했다. 이는 일반적인 조선시대 불교 역사상(歷史像)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 받았다는 이미지와 대비돼 보우의 활동이 단지 불교 부흥을 위한 것으로 부각된 반면, 중종대에 단절되다시피 한 불교 전통이 임진왜란 이후 부흥하였다는 불교사 인식에 따라 보우의 사상이 전·후대의 그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거의 주목 받지 못했다. 근래에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기존의 역사상에 오류가 적지 않음이 밝혀지고 있는데, 명종대의 불교정책은 문정왕후의 신앙에 따른 불교 부흥운동이었다거나 훈척세력의 파행적 정치행태였...
TAG 허응 보우, 청허 휴정, 불교정책, 훈척세력, 사림세력, 선교일치, 유불일치, Heoeung Bowoo, Cheongheo Hewjeong, huncheok, sarim, Seon-Kyo congruity, Yu-Bul congruity
임진왜란 시기 창녕 지역의 대응과 후대의 기억
김강식 ( Kang Sik Kim )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2014] 제46권 125~165페이지(총41페이지)
임진왜란 시기에 창녕 지역은 낙동강 유역에 위치하여 일본군의 진격로와 운송로였으므로 침입과 약탈을 일찍부터 당했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창녕 지역의 재지사족(在地士族)과 토성(土姓)들은 전쟁 초기부터 의병을 조직·활동했으며,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은 재지사족을 규합하여 의병운동을 지원했다. 이런 모습은 창녕 지역 의병운동의 한 특징이다. 임진왜란 개전기에 있었던 창녕과 영산전투는 경상우도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와 인근 지역의 의병들의 지원, 창녕과 영산 지역 의병들의 참여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창녕에서는 성씨(成氏)와 조씨(曺氏), 영산에서는 신씨(辛氏) 가문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의병을 규합하여 곽재우의 의병과 연합해 싸웠다. 지역의 지리에 밝은 의병들은 박진, 박곡 등에서 전공을 세울 수 있었다. 정유재란 시기에는 청야책...
TAG 임진왜란, 창녕, 영산, 곽재우, 화왕산성, 이석경, 물계서원,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壬辰倭亂, Changnyeong, 昌寧, Gwak Jaewoo, 郭再祐, Hwawang mountain fortress, 火旺山城, virtuous woman, 烈女, Mulgye Seowon, 勿溪書院
영조대 의소세손(懿昭世孫)의 예장(禮葬)과 그 성격
이현진 ( Hyeon Jin Lee )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2014] 제46권 167~221페이지(총55페이지)
이 논문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사이에 태어난 ‘의소세손’의 사례를 통해 조선시대 세손 상장례의 절차와 그 특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1752년에 그가 죽자 세손의 예장 절차에 관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준거로 삼을 만한 문헌이 없었다. 세손의 예장 절차에 관한 규정은 조선 말기까지 마련되지 않았다. 그 대신 『국조상례보편』(1752·1758)에 수록된 「의소세손상수교」가 있을 뿐이다. 세손의 흉사가 국가에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 아니어서 의주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따라서 의소세손의 훙서부터 입묘까지 예장의 전반적인 과정은 관찬자료와 의궤를 통해 정리했다. 의소세손은 1752년 3월 4일 창경궁의 통명전에서 훙서했다. 이후 복, 거애, 목욕, 습, 습전, 함, 영좌 설치, 입명정, 소렴, 소렴전, 대렴, 대렴전, 성빈, 성빈...
TAG 의소세손, 懿昭世孫, 예장, 禮葬, 의소세손상수교, 懿昭世孫喪受敎, 효장세자, 孝章世子, 현빈, 賢嬪, 국장, 國葬, Euiso, 懿昭 who held the rank of a son of a crown prince, "Seson, 世孫", The Ritual Funeral, 禮葬, Euiso Seson-sang Su`gyo, 懿昭世孫喪受敎, crown prince Hyojang, 孝章世子, Hyeon-bin, 賢嬪, the service for the
조선 후기 인담(印湛)의 『권실교보살유혹도생지의(權實敎菩薩留惑度生之義)』 연구
박인석 ( Inn Suk Park )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2014] 제46권 223~246페이지(총24페이지)
이 논문의 목적은 조선 후기 기림사(祗林寺)에서 간행된 인담(印湛)의 『권실교보살유혹도생지의(權實敎菩薩留惑度生之義)』를 통해 저자인 인담의 사승관계와 문헌의 간행연도를 밝히고, 이 문헌의 주된 내용인 대승보살이 중생제도를 위해 남기는 미혹의 정체를 해명하는 데 있다. 먼저 인담은 자신을 ‘설암문인(雪巖門人)’으로 밝히는데, 인담의 스승인 설암에 대해서는 석실명안(石室明安, 1646~1710)으로 보았다. 이는 명안의 문집에 나온 문인명단에 인담이 들어가 있다는 점을 비롯하여, 양자 모두의 교학적 배경에 화엄학과 천태학이 있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고서목록』에서 이 문헌의 간행시기인 갑진년을 1784년으로 본 것은 잘못된 추정이며, 이보다 앞선 1724년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 인담이 ‘유혹도생’에 대해 구체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은 특...
TAG 인담, 印湛, 명안, 明安, 기림사, 祗林寺, 유혹도생, 留惑度生, 보살, 菩薩, 화엄, 華嚴, 천태, 天台, Indam, 印湛, Myongan, 明安, Kirimsa, 祗林寺, Leaving illusion to save sentient beings, 留惑度生, the Bodhisattva of Icchantika, 菩薩闡提, Hwa`om, 華嚴, Chontae, 天台
성호학파의 천주교 인식과 유교적 대응
임부연 ( Boo Yeon Lim )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2014] 제46권 247~282페이지(총36페이지)
본 논문은 18세기 조선사회의 종교적 타자로서 서학(西學)의 천주교가 초래한 지성적 충격에 대해 성호학파가 보여준 유교적 대응 양상을 검토하였다. 천주교에 대한 성호학파 유학자의 기본관점은 상이하였다, 우선, 서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성호 이익(星湖李瀷)은 민생과 인륜을 중시하는 실용(實用)의 관점에서 선별적 포용주의를 주장한다. 신후담(愼後聃)과 안정복(安鼎福)은 도학(道學)-성리학(性理學)의 정통의식에 기초하여 각각 이론적, 당파적 차원에서 전면적 배타주의 입장을 취하였다. 마지막으로 정약용(丁若鏞)은 천주교 신앙과 배교(背敎)의 경험 속에서 천주교의 지성적 자극을 활용하여 유교전통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사유체계를 구성해낸다. 천주교에 대한 성호학파 유학자의 기본관점이 상이하였지만 그 대응의 전반적인 추이를 살펴보면, 천주교의 ‘천주(天主)’ 개...
TAG 성호학파, 천주교, 서학, 성호 이익, 신후담, 안정복, 정약용, Seongho School, 星湖學派, Catholicism, 天主敎, Western Learning, 西學, Seongho Yi-Ik, 星湖 李瀷, Shin Hu-Dam, 愼後聃, An Jeong-Bok, 安鼎福, Jeong Yag-Yong, 丁若鏞
18세기말~19세기초 지식인과 지식계의 동향
이경구 ( Kyun Gku Lee )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2014] 제46권 283~312페이지(총30페이지)
1801년의 신유박해는 사상의 관용 분위기를 위축시켰다. 그러나 소설, 야담과 같은 대중적 독서물의 생산과 소비는 더 왕성해졌다. 본고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이같은 연속적이면서도 단절적인 사상의 흐름에 대한 연구이다. 18세기부터 조선 사회의 세속화는 가속화되었다. 그 핵심에는 서울에서 기원한 새로운 문화 유행이 있었다. 국가의 지속적인 규제에도 불구하고, 그 흐름은 점차 명분 우위의 사회를 바꾸었다. 그리고 붕당, 신분 등에 구애받지 않는 지식인 그룹도 생겨났다. 19세기는 18세기 후반의 이 경향에 대한 반동에서 출발했다. 서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지식 경향은 상당 부분 은닉되었다. 그러나 1806년(순조 6) 이후 활력을 잃은 집단은 오히려 국가였다. 사상 전반에 대한 국가의 대응은 대단히 고식적이었다. 지식인들은 빠르게 이전의 활력...
TAG 지식인, 지식계, 知識界, 속화, 俗化, 붕당 의식, 국가의 경화, 硬化, intellectual, intellectual world, secularization, the consciousness of Bungdang, 朋黨, the hardening of government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과 일본의 근대지(近代知)
조명제 ( Myung Je Cho )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2014] 제46권 313~338페이지(총26페이지)
한용운은 1970년대에 민족문학론과 관련하여 『창작과비평』에 의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문학사적 평가에 따라 80년대 이후 민족문학론의 시각에서 많은 연구 성과가 제시되었다. 또한 90년대 이후에는 근대불교사를 비롯한 인문학 전반으로 연구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한용운 연구는 민족 담론에 입각한 ‘신화화된 이미지’가 확대, 재생산된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조선불교유신론』에 대한 연구도 대부분 한용운의 근대불교, 민족불교에의 지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결론으로 일관되고 있다. 이러한 한용운 연구의 한계와 문제점을 벗어나기 위해 이 글은 사상 연쇄라는 관점에서 메이지 일본의 근대지가 량치차오라는 필터를 거쳐 한용운에게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히 문명론과 근대철학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일본의 근대지가 ...
TAG 한용운, 량치차오, 근대지, 문명론, 칸트철학, 이노우에 엔료, Han Yong-un, Liang Chi-Chao, Japanese modern knowledge, Fukuzawa Yukichi, social evolution theory, Kant
한말 일본유학생들의 자기인식과 계몽논리: 1900년대 일본유학생을 중심으로
이태훈 ( Tae Hoon Lee )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2013] 제45권 1~34페이지(총34페이지)
1900년대 일본유학생들은 자유로운 조건 속에 일본에 유학한 첫 번째 유학생집단이자, 스스로를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주체라고 인식한 지식인 집단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사회의 남루한 현실과 계몽의 목표사이에서 한국사회를 근본적 개혁대상으로 사고하였고, 이는 한국사회와 한국민의 주체적 능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졌다. 또한 한국사회를 ‘근본적’ 개혁대상으로 간주하는 사고는 존재의미를 무시당한 한국사회의 반발을 가져왔고, 이는 다시 현실에 대한 유학생들의 실망으로 이어졌다. 결국 불안한 현실에서의 위상, 한국사회의 중견이라는 과잉된 자부심, 외면당한 한국사회에 대한 실망감 속에 유학생들은 내적으로 끊임없이 동요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일거에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정치적 모험에의 투신과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적 삶’의 모습들이 점차 대두하...
TAG 유학생, 대한흥학회, 대한학회, 태극학회, 계몽운동, 계몽의 모순, 지식인, 자기인식, Study-abroad Students, Association for the Revival of Korea, T`aekuk Association, EnlightenmentMovement, TheContradictionof Enlightenment, Intellectuals, Patriotism, Constitutional Government
대한제국기 황성신문(皇城新聞)의 중국 인식
노관범 ( Kwan Bum Noh )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2013] 제45권 35~64페이지(총30페이지)
한국 사회에서 중국의 타자화가 촉진된 것은 근대 이후이지만 한국 근대 언론이 한결같이 중국을 타자의 시선에서 인식했던 것은 아니다. 『황성신문』은 한국 근대 중국 인식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이다. 청일전쟁 이후 문명진보의 시각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가운데 『황성신문』 역시 초기에는 중국의 후진성에 주목하였으나 후기에 가서는 자강의 모델과 연대의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중국을 인식하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황성신문』의 중국 인식은 크게 세 시기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초기의 『황성신문』은 비록 북청사변과 같은 절망적인 중국의 현실과 직면하였지만 한중 양국의 상호적인 문명진보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중국의 개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둘째, 중기의 『황성신문』은 영일동맹과 러일전쟁을 계기로 한중 양국에 부과된 현재적 일체감을 적...
TAG 대한제국, 황성신문, 중국관, 자강, 한중연대, Great Han empire, 大韓帝國, Hwangsungshinmun, 皇城新聞, view of China, 中國 認識, self-strengthening, 自强, kinship of Korea and China, 韓中連帶
근대 불교의 종교 비교 방법을 통한 정체성 인식
김성연 ( Seong Yeon Kim )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2013] 제45권 65~93페이지(총29페이지)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 종교다원주의 사회로 변모한 조선에서 불교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체제의 개선과 대중화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근대적 종교정체성의 확립을 필요로 했다. 근대 불교의 종교 이해는 타종교,특히 기독교의 거센 비판에 대응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문명 종교로서 민중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차원에서 불교의 종교적 성격이 도출되었다. 주목할 것은 불교지식인들이 종교를 정의하는데 있어 그 방법론으로 비교종교학의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타종교와의 비교를 통해 불교의 종교적 성격을 부각시켰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근대 종교에 대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문명종교라고 인식된 기독교의 강한 비판이 있었기에, 종교 비교를 통해 이끌어낸 불교의 특성 이해는 전반적으로 무신론(無神論)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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