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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515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중국 근대 신문에 발표된 한국 한시와 그 의미
김주현 ( Kim Ju-hyeon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7] 제63권 303~332페이지(총30페이지)
본고에서는 중국 근대에 중요한 신문으로 평가되는 『북경중화신보』, 『중화신보』, 『사민보』를 중심으로 한국인들의 작품 발굴에 나섰다. 중국의 주요일간지로 꼽히는 이 신문들에서 이미 한국 문인들이 쓴 논설들이 적잖이 발견되었다. 본 연구자는 이들 신문의 마이크로필름을 뒤진 결과 『북경중화신보』에서 김택영의 시 1편을, 상해 『중화신보』에서 김기한의 한시 6편과 박경하의 한시 1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민보』에서도 박경하의 한시1편을, 『藝林叢刊』에서 김택영의 한시 1편을 찾을 수 있었다. 기존 연구에서 김택영의 활동은 어느 정도 밝혀져 있지만, 김기한과 박경하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 김창강과 김기한, 그리고 박경하의 한시를 중국 주요 신문에서 발굴해내고, 아울러 그들의 활동을 밝혀낸 것은 새로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TAG 김택영, 김기한, 박경하, 중화신보, 북경중화신보, 사민보, 한시, 자료 발굴, Kim Taek-young, Kim Ki-han, Park Kyung-ha, Joonghwa Shinbo, Beijing Joonghwa Shinbo, Shaminbo, Korean Poetry in Classical Chinese, unearthing of works
서계(西溪) 김담수(金聃壽)의 상주(尙州) 정착과 삶
고혜령 ( Koh He-ryung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7] 제62권 7~41페이지(총35페이지)
상주에 의성김씨가 世居하게 된 것은 星州에 살던 西溪 金聃壽일가가 정유재란 이후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이다. 서계 김담수는 의성김씨의 상주 입향조로서 그의 학문과 삶을 통해 학문적 도의적 전통을 세워 의성 김씨 후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이다. 이 글은 의성 김씨의 世系와 김담수의 상주 입향과정, 그리고 서계 김담수의 삶과 사상, 그리고 교유관계를 논한 것이다. 서계 김담수는 영남지방의 유학자로서 처사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는 왜란을 겪으면서 피난과 가족의 보호, 그리고 전쟁을 지원하는 일에 참여하면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우국 충정을 발휘하였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 한강 정구, 월사 이정구, 야로 이순 등은 학문에 밝고 실천에 힘썼으며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처사로서 살았던 지조있는 선비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이익보다는 의리를 중히 여기고 가족...
TAG 서계(西溪), 김담수(金聃壽), 상주(尙州), 임진왜란, 정유재란, 피난. 서계선생일고, Kim Dam-su, Euisung(의성(義城)) Kim Family, Sang-ju, hermit Confucian, Japanese invasion of Korea, the 7 years war of Japanese invasion
서계 김담수 문학에 나타난 ‘가족’과 그 의미
정우락 ( Jeong Woo-rak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7] 제62권 43~79페이지(총37페이지)
본고는 김담수의 문학을 중심으로 그가 ‘가족’에 대하여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것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김담수는 가솔을 이끌고 가야산으로 피란을 하였고, 정유재란 이후에는 안동과 상주 등지를 떠돌게 된다. 김담수의 가족 사랑과 귀향의지는 바로 이러한 배경 하에 산출된 것이다. 가족을 향한 김담수의 마음은 크게 넷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효심, 思鄕과 思母 정서의 결합, 長子에 대한 각별한 부정, 여러 아들에 대한 정서적 교감과 당부가 그것이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家-國-天下’는 근본적으로 상통한다. 이 때문에 김담수 문학에 나타난 가족의 의미를 사회적인 문제와 직결된다. 그 스스로 맏아들 정룡에게 고을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修己라 하였고, 그의 작품에...
TAG 서계 김담수, 가족, 임진왜란, 전쟁체험, 귀향의지, 유교적 세계관, 효도, 자애, 선순환구조, Seogye Kim Dam-su, family, Imjinwaeran, war experience, determination to return to home, Confucian view of the world, filial duty, affection, virtuous cycle structure
의성김씨의 유래와 五土山 鎭民祠 사적
김윤규 ( Kim Yun-kyu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7] 제62권 117~161페이지(총45페이지)
의성의 읍민들과 의성김씨 문중에서 오랫동안 향사하고 기념하던 오토산 진민사의 문헌들이 일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는 이 문서들이 가진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 문서가 생산된 오토산과 진민사의 문화유적이 중요한 민족문화의 일부임을 확인한 일이다. 의성김씨는 시조 金錫의 후손으로 그 중 대부분이 고려태자첨사 金龍庇의 후손이다. 이들은 고려시대부터 한국의 중요한 성씨 중 하나로 국가적 사명을 담당했으며, 지금도 30만 명의 인구를 가진 큰 씨족이다. 이들의 조상인 김용비는 고려시대에 의성읍의 사람들에게 큰 공덕을 끼쳐 지역민들이 사당을 지어 향사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록된 수백년의 제향기록은 잘 해석되고 설명되어 민족문화유산으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오토산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에는 지질시대의 유적인 공룡화석산지로...
TAG 의성, 의성김씨, 오토산, 진민사, 김용비, Uisung(義城), Uisung Kim’s clan(義城金氏), Jinmin-sa(鎭民祠), Mountain Oto(五土山), Yongbi Kim(金龍庇)
오토재(五土齋) 전존문서(傳存文書)의 현황(現況)과 특징(特徵)
황위주 ( Hwang Wee-zoo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7] 제62권 203~244페이지(총42페이지)
본고는 오토재에 전존하고 있는 문서의 현황을 개괄적으로 검증해보고자한 것이다. 오토재 문서는 전체 202건 3500면 가량으로 파악되었다. 시기적으로는 1945년 이후 현대문서가 제일 많았고(50% 이상), 일제강점기 문서가 그 다음이며(약 30%), 1910년 이전 고문서는 약 29건(15%) 정도였다. 내용상으로는 時到 參謁錄 등 방문 인물 관련, 都錄 文簿 등 재정 관련, 齋任案 執事分定 등 운영 주체 관련, 節目 事例 등 운영 규칙 관련, 기타 시설의 重建 보수와 관련된 문건 등 5종이 주목할 만하였다. 방문 인물 관련 문건은 전체 문서의 1/3 이상에 달할 정도로 수량이 많고, 기록 내용도 다양하고 장기 지속적이었다. 오토재의 방문자 규모와 시기별 변화양상, 지역사회에서의 영향력 등을 밝힐 수 있는 핵심 자료로 주목할 만...
TAG 김용비(金龍庇), 진민사(鎭民祠), 오토재(五土齋), 고문서, 의성김씨, 재사(齋舍), 향현사(鄕賢祠), Kim Yong-bi, Jeonminsa Memorial Shrine, Otojae, ancient literature, Kim of Uiseong Clan, tomb ritual house, sage memorial community shrine
의성 진민사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의례적 성격
김미영 ( Kim Mi-young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7] 제62권 245~280페이지(총36페이지)
이 논문은 의성김씨 문중 사우인 오토산 진민사鎭民祠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의례적 성격을 조명하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진민사는 의성군 사곡면 토현리 오토산五土山에 자리하고 있으며, 제향인물은 의성김씨 중시조 김용비金龍庇이다. 그는 고려 명종 때 의성지역에 거주하면서 민란을 평정한 공적을 세워 지역민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진민사는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이다. 이처럼 당시 김용비가 세운 공적은 지역공동체를 넘어 국가의 위기를 구한 것이기 때문에 그를 위한 추모공간인 진민사 역시 지역성에 기반한 공묘公廟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진민사가 의성읍내 관아 근처에 세워졌다는 점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이후 진민사는 퇴락과 화재 등으로 수차례에 걸친 중수와 이건 등을 거듭하다가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읍내에 자리하고 있던 사당이 헐리면서 지금의 ...
TAG 의성, 사우, 향교, 서원, 향사, 문중, Uiseong, shrine, confucian school, lecture hall, squire, family
팔공산 ‘부인사(夫人寺)’의 탄생
이영호 ( Lee Young-ho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7] 제62권 307~340페이지(총34페이지)
부인사는 대구의 진산인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신라시대부터 존재한 고찰로 오늘날까지 법등이 이어지고 있으며, 동화사와 함께 팔공산을 대표하는 사찰로서 중요하다. 부인사의 창건 경위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문헌자료에서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유적·유물들을 통해 신라·고려 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한 동안 대찰로서 존재하였음이 밝혀졌다. 부인사가 크게 주목된 것은 고려시대에 초조대장경 봉안과 관련해서였다. 부인사에 대한 연구도 대부분 초조대장경과 관련하여 진행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부인사의 처음 명칭과 창건 경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베풀어지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간 소홀히 다루어져 온 부인사의 창건과 관련된 문제들을 검토하였다. 부인사의 명칭은 符仁寺, 夫人寺, 夫人之寺 夫仁寺, 夫仁山寺 ...
TAG 부인(夫人), 부인사(夫人寺), 성덕왕(聖德王), 지소부인(智炤夫人),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 팔공산(八公山), Lady, Buin-sa temple, King Seongdeok, Lady Jiso, Tripitaka completed in 1087, Palgong-san Mountain
주자(朱子) 심통성정론(心統性情論)의 양면성과 퇴(退)·율(栗) 성리학(性理學)
이상익 ( Lee Sang-ik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7] 제62권 341~379페이지(총39페이지)
주자의 心統性情論은 양면성을 지닌다. 심통성정에 대한 사실적 설명은, ‘心이 性을 담고 있으면서 知覺 작용을 통해 情으로 발현시킨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心은 항상 性·情을 통섭하는 것이요, 또 性·情을 통섭하는 주체로서의 心은 氣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와 달리, 당위적 관점에서는 心統性情이 ‘心이 性·情을 주재하여, 未發時에는 中을 이루고, 已發時에는 和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설명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心이 性·情을 주재하지 않는(못하는) 상황이 설정되고 있으며, 또 ‘心의 주재’를 ‘天理의 주재’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心統性情에 대한 ‘사실적 설명’은 氣質變化의 수양론으로 연결되는 반면, ‘당위적 설명’은 存養省察의 수양론으로 연결된다. 이처럼 ‘사실적 설명’과 ‘당위적 설명’은 여러 모로 서로 내용이 다른바, 따라서 우리는 ...
TAG 심통성정(心統性情), 사실적 설명, 당위적 설명, 수양론(修養論), 기질변화(氣質變化), 존양성찰(存養省察), mind comprehends nature and sentiment, realistic explanation, normative explanation, cultivation theory, change of temper, preservation and reflection
임진왜란 초기 봉화 소천(小川) 전투의 전개와 전쟁사적 의미
노영구 ( Roh Young-koo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7] 제62권 381~406페이지(총26페이지)
본 연구는 임진왜란 초기 경상도 북부 지역을 침공한 일본군 제 4군의 동향과 이들의 경상도 북부 지역 진출을 저지한 柳宗介 부대의 봉화 小川 전투의 경과 및 이 전투가 이후 전황에 미친 영향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소천 전투에서 수백 명의 柳宗介 의병 부대는 다수의 일본군을 상대로 서전에서 승리하는 등 일본군의 기세를 크게 위축시켰다. 이후 일본군의 기습으로 결국 패하였으나 류종개 의병 부대의 활약으로 3일 동안 일본군의 경상도 북부 내륙으로의 진출을 저지하였다. 3일 간의 지연전으로 安東 일대 조선군은 군사력을 급히 정비하여 방어에 필요한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소천 전투와 이후의 성공적인 방어전의 결과 충청도, 강원도와 경상도 북부를 연결하고 이 지역 지배력을 확보하고자 하였던 일본군의 전략적 목표가 좌절되었다는 점에서 그 전투사...
TAG 류종개(柳宗介), 임진왜란, 김륵(金?), 의병(義兵), 소천(小川), Lyu Jong-gae, Imjin War, Kim Leuk, Righteous Army, Bonghwa Socheon
묵암(默巖) 김동필(金東弼)의 삶과 시세계
권진호 ( Kwon Jin-ho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7] 제62권 81~113페이지(총33페이지)
이 논문은 묵암(默巖) 김동필(金東弼, 1736~1807)의 삶과 시세계를 조명하였다. 그는 평생 향촌에 은거하여 처사형(處士型) 학자의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그가 추진해 온 사업은 한마디로 한 가문의 가통(家統)을 세우는 일과 향촌사회의 민풍(民風)을 순화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그의 학문은 이론적인 측면보다는 내면의 심성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 같은 학문경향은 내적으로는 서계(西溪) 김담수(金聃壽, 1535~1603)와 월담(月潭) 김정룡(金廷龍, 1561~1619)의 가학(家學)의 전통과 외적으로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과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학문관점을 이어받아 자기 나름의 학문세계를 추구해 나갔다. 그 결과 360여수에 달하는 그의 시문학도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는 철리시(...
TAG 김동필(金東弼), 처사형(處士型), 가통(家統), 심성수양(心性修養), 민풍(民風), 학문관점(學問觀點), 철리시(哲理詩), 형상화(形象化), 가문사적(家門史的), 지역사회적(地域社會的), Dongpil Kim, a Confucian scholar without entering into official positions, family tradition, mind training, folk manners, scholarly aspects, poetry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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