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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AND 간행물명 : 백제연구612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자료소개(資料紹介) : 연운항시(連雲港市) 봉토석실(封土石室)의 조사(調査) 보고(報告)
고위 ( Wei Gao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3] 제57권 99~111페이지(총13페이지)
연운항시에 있는 封土石室은 雲臺山, 錦屛山, 伊蘆山 등의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인위적으로 축조한 봉토석실을 "唐王洞", "將軍洞", "土瓮子", "土洞子"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연운항시 봉토석실의 조사는 2011년 3월 8일에 공식적으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까지 조사된 봉토석실은 약 300여기로, 조사 지역은 海州區의 금병산, 灌雲縣의 이노산, 開發區의 中운대산 전체와 南운대산의 대부분 지역, 北운대산 전체가 이에 해당한다. 지금까지의 조사성과에 따라 봉토석실의 구조 및 연혁, 분포 현황 그리고 용도 등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가능하였다. 이러한 봉토석실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구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본고에서는 지리적 위치, 입지, 봉토의 형태, 묘실의 방향, 석실의 형태...
TAG 봉토석실, 封土石室, 연운항, 連雲港, 운대산, 雲臺山, 금병산, 錦屛山, 이노산, 伊蘆山, 당왕동, 唐王洞, 장군동, 將軍洞, 토옹자, 土瓮子, 토동자, 土洞子, Stone chamber, Lenyungang, Yuntaishan, Tangwangdong, Jiangjundong, Tang dynasty grave tomb
『삼국유사(三國遺事)』 「변한백제조(卞韓百濟條)」에 투영(投影)된 백제사(百濟史) 인식
박현숙 ( Hyun Sook Park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3] 제57권 113~130페이지(총18페이지)
『삼국유사』는 한국고대사의 체계를 수립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사서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아쉽게도 『삼국유사』의 인용문 가운데에는 부정확한 서술들이 엿 보인다. 백제사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삼국유사』 『변한백제조』에서 변한과 백제를 대응시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마한-백제로 이어지는 역사적 계승성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이는 당연히 부정확한 서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삼국유사』 찬자의 無知에서 비롯된 부정확함이나 고의적인 改變이 아니라, ``마한-백제`` 인식에 대신해서 자리 잡은 ``변한-백제`` 인식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쓰여지기 전에 중국의 기록에서는 ``마한-백제``의 계승성을 서술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원의...
TAG 백제, 百濟, 『삼국유사, 三國遺事』, 변한백제조, 弁韓百濟條, 일통삼한, 一統三韓 인식, 認識, 삼한, 三韓-삼국, 三國 연계론, 連繫論, 최치원, 崔致遠, Paekche, Samgukyusa, Byeonhan-Paekche, Samhaniltong` doctrine, Samhan-Samguk Line, Chi-Won Choi
일반눈문(一般論文) : 백제사원(百濟寺院)과 일본(日本) 비조사(飛鳥寺) 삼김당(三金堂)의 원류(源流)
이병호 ( Byong Ho Lee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3] 제57권 131~176페이지(총46페이지)
일본 飛鳥寺 三金堂의 가람배치에 대해서는 高句麗起源說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하지만 飛鳥寺에서는 三金堂이라는 플랜 이외에 고구려 사원과 관련시킬 만한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6세기대 백제에서 고구려계 문화 요소가 다수 확인되고, 백제 사원에서 飛鳥寺 삼금당과 비교 가능한 신요소가 확인되는 점을 들어 百濟起源說을 새롭게 제시하였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전반부터 시작된 고구려계 문화의 백제로의 유입은 6세기 중엽부터는 점차 지배층으로까지 확산되어, 위덕왕릉으로 추정되는 능산리 東下塚에는 고구려 계통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위덕왕은 567년을 기점으로 하여 북조 국가와의 교섭을 재개하는 등 왕권강화 작업을 본격화하며, 남조 위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북조나 고구려 계통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한편 백제에서는 미륵사지 건립 이전인 6세기 중후반의...
TAG 비조사, 飛鳥寺, 삼금당, 三金堂, 고구려계 문화, 왕흥사지, 王興寺址, 다원식사원, 多院式寺院, 프로젝트팀, Asukadera, Three Golden Shrines, Goguryeo culture, Wangheungsa Temple site, temple type with multiple compounds, task force
일반눈문(一般論文) : 평성궁(平城宮) 정원(庭園)의 사용형태(使用形態)와 그 특징(特徵)
김은정 ( Eun Jung Kim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3] 제57권 177~206페이지(총30페이지)
본고는 平城宮 안팎에 조영된 정원의 특징과 그곳에서 실시된 의식과 향연의 의미를 해명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平城宮 안팎에 조영된 정원 즉 南苑, 松林苑, 西池(宮), 東院, 楊梅宮은 節會의 場으로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南苑, 松林苑, 西池(宮)은 전적으로 聖武천황 통치기에 사용되었다. 또한 南苑, 松林苑, 西池(宮)이 사용형태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는 반면, 東院과 楊梅宮은 그것이 內裏와 유사했다. 南苑, 松林苑, 西池(宮)이 절회의 場으로 선택된 것은 정원의 경관이나 시설이 해당 절회의 성격과 부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정원을 포함한 보다 넓은 宮都 공간을 절회의 場으로 사용하고자 했던 聖武천황기의 통치이념에 있었다. 聖武천황은 국제적으로는 일본의 지위를, 국내적으로는 자신의 지위를 향상시킬 필요가 있었다. 聖...
TAG 평성궁, 平城宮, 정원, 庭園, 남원, 南苑, 송림원, 松林苑, 서지(궁), 西池(宮), 동원, 東院 지구정원, 절회, 節會, 성무천황, 聖武天皇, 안압지, 雁鴨池, , 唐 장안성, 長安城의 금원, 禁苑, the Heijo-kyu, garden, the Shorin-en, the Tohin, the Yomai-kyu, the Sai-ji (-kyu), seasonal rites and banquets, the Shomu emperor period, t
일반눈문(一般論文) : 7세기(世紀) 후반(後半) 백제부흥운동(百濟復興運動)의 두 노선(路線)과 왜국(倭國)의 선택(選擇)
이재석 ( Jae Seok Lee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3] 제57권 207~233페이지(총27페이지)
7세기의 동아시아는 격동의 시대였다.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신라와 당의 대결 등 한반도의 통일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격동 속에서 외교는 곧 국가의 사활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였다. 본고에서는 백제부흥운동과 왜국의 관계를 다루었다. 백제 멸망 후 당으로 압송되었던 태자 부여융은 웅진도독부로 돌아와 같은 백제 왕족인 부여풍장이 지휘하는 백제부흥운동 세력을 괴멸시키는 데 선봉이 되었다. 필자는 이러한 부여융의 행동을 반역의 시점이 아니라 이것 또한 백제부흥운동의 한 갈래로서 파악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663년의 주류성-백촌강 전투는 친당 노선의 백제부흥운동과 反唐 노선의 백제부흥운동이 격돌한 아이러니컬한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부여풍장이 주도한 반당 노선의 백제부흥운동이 종식된 후 당은 곧바로 부여융과 신라의 문무왕 사이에 회맹을 주...
TAG 백제부흥, 百濟復興, 부여풍장, 夫餘豊璋, 부여융, 夫餘隆, 친당, 親唐<백제, 百濟>, 천지천황, 天智天皇, 웅진도독부, 熊津都督府, 고구려, 高句麗, 신라, 新羅, Baekje restoration movement, Buyo Pungjang, Buyo Yung, Pro-Tang , King Tenji, Woongjin Dodokbu, Koguryo, Silla
한성백제(漢城百濟)의 차문화(茶文化)와 다확(茶確)
문동석 ( Dong Seok Moon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2] 제56권 1~26페이지(총26페이지)
이 논문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소형 돌절구, 즉 다확(茶確)을 매개로 하여 한성백제시대 차문화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백제는 삼국 중에서 중국의 사상과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국가였다. 따라서 4세기 이후 백제와 중국과의 밀접한 교류로 볼 때 남조시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차문화도 백제에 자연스럽게 전해졌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남조시대에 차는 병차(餠茶)가 일반적이었다. 병차란 다 자란 차 잎은 끈기가 적기 때문에 쌀로 풀을 끓여서 혼합하여 만든 떡이다. 병차를 마실 때에는 우선 다확(茶確, 절구)에 병(餠)을 넣고 갈아서 분말로 하고, 그것을 그릇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양념을 넣어 마셨다. 따라서 다확은 남조시대에 차를 마시는 데 꼭 필요한 도구였다. 이러한 다확이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서 2012년 현재 9점이 출토되었...
TAG 한성백제, 漢城百濟, 차문화, 茶文化, 병차, 餠茶, 다구, 茶具, 다경, 茶經, 음다, 飮茶, 도구, 道具, 다확, 茶確, 청자완, 靑磁碗, Hansung Baekje, pungnabtoseong, mongchontoseong, dahwak, Byeongcha
한성(漢城) 백제기(百濟期) 금강유역(錦江流域) 거점지역(據點地域)의 지형조건(地形條件)
이홍종 ( Hong Jong Lee ) , 조보람 ( Bo Ram Cho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2] 제56권 27~51페이지(총25페이지)
금강유역의 충적지 지형은 크게 충적단구, 자연제방, 구하도, 배후습지, 선상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오창에서 조치원에 이르는 미호천 서쪽지역은 안성천유역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충적단구가 펼쳐진 지형으로서 선사시대 이래 가장 안정적인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금강유역의 지형조건은 하천변을 따라 형성된 고분군들과 밀접히 연관되면서 고분군 축조집단의 거점지로서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거점지의 조건은 상위 계층의 존재, 중심교역지로서의 기능, 교통중심지로서의 역할 등을 모두 충족시켜야만 한다. 본고에서 주목하는 점은 한성백제기 금강유역권 고분군의 분포를 중심으로 고분의 계층성과 영역권을 설정하고, 영역권별 중심거점지역의 위치와 지형환경을 찾아보는 데 있다. 충적지의 지형조건과 고분분포에 따른 영역권 설정을 통해 분석한 결과, 한성백제기 ...
TAG 금강유역, 錦江流域, 충적지형, 沖積地形, 영역권, 領域權, 중심거점지역, 中心據點地域, 지형환경, 地形環境, the River Geum basin, alluvial plain, territory, core stronghold, geomorphic environment
나주(羅州) 복암리(伏岩里) 출토(出土) 백제목간(百濟木簡)의(義) 판독(判讀)과 용도(用途) 분석(分析) -7세기 초 백제의 지방지배와 관련하여-
윤선태 ( Seon Tae Yoon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2] 제56권 53~74페이지(총22페이지)
복암리 목간은 백제의 중앙 도성이 아닌 지방사회에서 발굴된 최초의 사례이며, 목간의 묵서에도 종래의 문헌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백제의 戶口파악방식, 농업경영(量田 및 단위생산량), 그리고 ``郡-城``의 행정체계에 관한 매우 획기적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어, 그 의의가 자못 크다. 복암리 목간에 대한 본고의 분석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복암리 <목간11>에 기록된 ``庚午年``은 610년으로 추정되며, 내용상 호구파악이나 군-성의 행정 관련 문서목간들이 대부분이어서, 복암리 목간은 7세기 초에 백제 지방관부가 작성한 목간으로 이해된다. 둘째, 복암리 목간을 통해 백제의 ``戶籍``과 기층사회의 존재양태를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다. <목간2>와 <목간5>를 통해 백제 戶籍의 서식도 어느 정도 복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백제의 戶는 복합...
TAG 나주, 羅州, 복암리, 伏岩里, 목간, 木簡, 호적, 戶籍, 지방행정, 地方行政, Najoo-si, Bogam-ri, Wooden tablets, Household Register, Administration system in Local societies
백제(百濟)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의 서풍(書風)과 그 형성배경(形成背景)
정현숙 ( Hyun Sook Jung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2] 제56권 75~112페이지(총38페이지)
백제 말기에 정계에서 은퇴한 귀족 사택지적이 세운 <사택지적비>는 654년이라는 건비년으로 인해 그 해서체가 동시대 初唐風이라는 주장과 서풍으로 본 南北朝風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왔다. 따라서 본고는 이 두 서풍과의 비교를 통해 <사택지적비> 서풍의 참모습을 찾아보고자 했다. 본고를 통해 웅진시기의 서풍이 그러하듯, 사비시기의 <사택지적비>도 瘦勁한 초당풍이 아닌 雄强茂密하면서 流麗典雅한 남북조풍의 해서를 모범으로 삼고 남북조 서풍을 통합한 수나라 서풍 도 약간 섞어 백제풍을 창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당풍이 국제적으로 유행하던 시기에 백제에서 쓰인 이러한 남북조풍의 형성배경을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째,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여 택한 오랜 기간 익숙했던 백제의 남북조풍 취향이다. 백제는 200년 이상 주로 중국의 남방문화를 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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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조시대(飛鳥時代) 궁도(宮都)와 백제(百濟) 사비기(泗泌期) 도성(都城)의 구성요소(構成要素)에 관한 비교시론(比較試論)
鈴木一議 ( Suzuki Kazuyoshi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2] 제56권 113~135페이지(총23페이지)
飛鳥시대에는 일본과 백제의 관계가 밀접했으며, 백제가 일본의 국가형성에 끼친 영향은 컸다. 본고에서는 정치적·문화적 영향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생각되는 宮都를 飛鳥시대의 궁도와 백제 사비기 도성의 구성요소 가운데 나성의 존재·일정한 토지구획의 유무·궁전건물(대형건물)·苑池(池狀유구) 등 4개 항목에 입각해서 비교·검토하였다. 그 결과 나성은 사비기 도성에는 존재하지만 飛鳥에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 요인을 대외관계라는 사회적 배경의 차이로 보았다. 일정한 토지구획은 양자 모두 불명확했다. 이는 중국에서 성립한 條坊制 도성을 도입하기 이전 상황을 나타내 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正殿으로 추정되는 궁정건물(대형건물)에는 설계 사상에서 공통점이 있었는데 이는 백제의 영향이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또한 飛鳥의 원지(지상유구)는 백제의 영향을 받아 방형 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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