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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AND 간행물명 : 백제연구612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백제(百濟) 익산(益山) 미륵사(彌勒寺)의 3탑(塔) 3김당(金堂)과 쌍탑(雙塔)의 기원(起源)
조경철 ( Gyungcheol Jo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5] 제62권 17~36페이지(총20페이지)
한국 쌍탑의 기원은 통일신라의 사천왕사지의 쌍목탑이고 남아있는 가장 오랜 쌍탑은 감은사 쌍탑으로 알려져 왔다. 본 글은 익산 미륵사의 3탑을 가운데 목탑, 양 옆의 석탑을 쌍석탑으로 분해하여 한국 쌍탑의 기원을 미륵사로 추정해 보았다. 익산 미륵사는 미륵신앙에 의한 사찰이므로 중금당의 주존은 미륵불임에 틀림없다. 나머지 동서금당의 주존이 미륵이 아니라면 두 금당에는 미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처가 모셔졌을 것이다. 미륵경전에는 미륵이 장차 성불하리란 수기를 준 석가모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동서금당 중 하나는 석가를 모셨을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한 곳은 미륵과 석가 모두와 관련 있는 다보불일 가능성이 높다. 법화경에 의하면 다보탑 안에 나란히 앉아있는 석가와 다보에게 미륵이 두 분의 신기한 인연을 묻고 설법을 청하고 있다. 서석탑에서 발견된 사...
TAG 미륵사, 彌勒寺, 쌍탑, 雙塔, 선화공주, 善花公主, 사택왕후, 沙宅王后, 미륵신앙, 彌勒信仰, 법화신앙, 法華信仰, Mireuksa, twin pagodas, Princess Seonwha, Mireuk-Belief, Queen Sataek, Beopwha-Belief
백제(百濟) 석탑(石塔)의 독창성(獨創性)과 한국(韓國) 석탑(石塔)에 미친 영향(影響) -미륵사지(彌勒寺址) 석탑(石塔)을 중심(中心)으로-
박경식 ( Kyoungshik Park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5] 제62권 37~70페이지(총34페이지)
7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불교미술사상에서 가장 큰 변화는 불교조형물의 조성에 석재가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동양 삼국의 불교문화에서 한국적인 특성이 발현되었음에서 가장 주목되는 현상이라 하겠다. 이 같은 동향 가운데서 백제에서 건립한 미륵사지 석탑은 이제껏 동양 삼국이 건립하던 목탑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일거에 깨트리는 쾌거였다. 기왕에 건립되던 목조건축의 기술력의 총체적으로 집결함과 동시에 이원구조체라는 독특한 공법을 적용해 9층에 달하는 석탑을 건립했다. 이를 통해 확인되는 것은 백제인의 실험정신과 이를 물적으로 실체화 해낸 그들의 기술력과 문화적 자부심이라 하겠다. 더불어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불탑 건립의 양상을 완전히 한국화 시켜 훗날 “석탑의 나라”로 불리울 수 있는 기반을 확립했다. 미륵사지 석탑이 지닌 독자성은 중국 고대 불탑의 주류...
TAG 미륵사지 석탑, 彌勒寺址 石塔, 이원구조체, 二元構造體, 목조건축, 木造建築, 운강석굴, 雲崗石窟, 정각형불탑, 亭閣型佛塔, 사문탑, 四門塔, 백제계 석탑, 百濟系 石塔, Mireuksaji Stone Pagoda, Binary Structure, Wooden Structures, The Pavilion Style Pagodas, Samoon Pagoda, Backje Pagodas
한국(韓國) 석탑(石塔) 출현기(出現期) 사리장엄방식(舍利莊嚴方式)의 변화(變化) 양상(樣相)
주경미 ( Kyeongmi Joo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5] 제62권 71~99페이지(총29페이지)
이 논문은 한국 석탑 출현기의 사리장엄구 및 사리장엄방식의 변화 양상에 대해서 현존 유물과 외국 자료와의 관계를 비교 검토하여 고찰한 논문이다. 한국의 사리신앙과 장엄 의례는 6세기 중엽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통해서 처음으로 전래되어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발전했다. 석탑은 7세기 초반부터 백제와 신라를 중심으로 건립되기 시작했으며, 두 나라의 사리장엄방식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여기에서는 백제 왕흥사지와 미륵사지, 그리고 신라 분황사와 황룡사지, 감은사지 출토품들을 중심으로, 탑내 사리봉안처의 위치, 봉안된 주요 성물의 성격, 공양구의 매납 방식, 사리기의 구성 및 양식 등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비교 고찰하였다. 백제와 신라의 사리장엄구 및 사리장엄방식은 언제나 동시대 중국을 거쳐 전래된 새로운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나름대로 자기화되...
TAG 백제, 百濟, 신라, 新羅, 미륵사, 彌勒寺, 분황사, 芬皇寺, 스리랑카, 동남아시아, 불상, 佛像, 불조발사리, 佛爪髮舍利, Baekje, Silla, Mireuksa temple, Bunhwangsa temple, Sri Lanka, Southeast Asia, Buddhist statue, Buddha`s hair and nail relics
마한(馬韓) 주구묘(周溝墓)의 유형(類型)과 시(時),공간적(空間的) 전개과정(展開過程) -경기(京畿),충청지역(忠淸地域)을 중심(中心)으로-
김희중 ( Heejung Kim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5] 제62권 128~164페이지(총37페이지)
본고에서는 주구묘의 유형을 크게 성토분구묘와 주구토광묘로 대별하여 살펴보았다. 먼저 성토분구묘와 주구토광묘는 선호하는 입지조건이 서로 달랐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러한 입지 조건의 차이를 반영하는 고고학적 현상으로는 등고선을 기준으로 한 주구와 매장주체부의 장축방향, 주구로부터 매장주체부까지의 거리를 들 수 있다. 즉 경사도가 높은 사면에 조영되는 주구토광묘는 유구의 유실을 감안하여 주구와 매장주체부의 장축방향을 등고선과 평행한 방향으로 두었으며, 주구와 매장주체부 간의 거리도 최대한 가깝게 조영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합장이나 추가장에 있어서도 주구토광묘는 매장주체부 간의 거리를 최대한 가깝게 조영함으로써 성토분구묘와 같은 내부 면적의 확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주구의 평면형태에 있어서 성토분구묘에서는 비교적 네 변을 모두 두른 방형이...
TAG 마한, 馬韓, 원삼국시대, 原三國時代, 주구묘, 周溝墓, 성토분구묘, 盛土墳丘墓, 주구토광묘, 周溝土廣墓, 분구, 墳溝, 봉토, 封土, Mahan, Proto-Three Kingdoms of Korea, Jugumyo, Bungumyo(mounded tomb with an encircling ditch), Jugutogwangmyo(the pit-tombs with an encircling ditch)
極東亞細亞 農獵區 設定
박순발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5] 제61권 1~19페이지(총19페이지)
고고학적으로 한반도 역사문화의 기원, 전개, 그리고 그 정체성 등을 모색하는 일은 최근 한반도와 인접한 중국 동북지역 고고자료의 증가와 더불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반도 북부에 대한 고고자료가 상대적으로 결여된 상태에서 자료의 해상력이 높은 남한지역과 중국 동북지역 고고자료를 직접 비교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그를 위한 작업 가설로서 한반도와 상대적으로 밀접한 일련의 시간적·공간적 범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이를 위해 가칭``극동아세아 농렵구(極東亞細亞 農獵區)``설정을 위한 고고학적 근거를 모색하였으며,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잠정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한반도의 선사문화는 랴오허-헤이룽쟝-우수리강으로 경계 지워진 장백(長白)-천산산지(千山山地) 지역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에는 어렵·수렵 위주의 비농...
TAG 극동아세아 농렵구, 極東亞細亞 農獵區, 중국 동북지역, 中國 東北地域, 구계유형, 區系類型, 한반도, 韓半島, 통형관, 筒形罐, 석묘, 石墓, 다뉴경, 多紐鏡, ar East Agriculture Fishing Hunting Region, FAEFHR, North east China, Korean peninsular, Archaelogical region of East Asia, Stone tomb tradition, Korean archaeology
백제(百濟) 전실묘(塼室墓)의 구조(構造)와 축조(築造) 배경(背景) 재검토(再檢討)
윤한나 ( Yun Han Na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5] 제61권 21~67페이지(총47페이지)
본고는 백제 전실묘인 무령왕릉과 공주 송산리 6호분, 교촌리 3호분을 중심으로 전실묘의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실묘 축조용 전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전실묘의 각 세부 구조에서 보이는 전 체축(體築)양상을 확인하여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의 구조적 차이를 새롭게 검토하였다. 이러한 작업 이후, 필자는 백제 전실묘의 축조 선후관계와 백제 웅진기에 외래 묘제인 전실묘가 축조된 배경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먼저 백제에서 처음 축조된 전실묘는 교촌리 3호분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그 구조와 축조용 전으로 보아 중국 남조 전실묘 축조 기술의 직접적인 영향이 간취되지 않는다. 따라서 필자는 교촌리 3호분을 백제의 전실묘 축조 기술의 미숙에서 비롯된 미완성 전실묘로 판단하였다. 이후 중국 남조의 전실묘 축조 기술(造墓技術)보다는 남조 梁의 전 제작 기술...
TAG 전실묘, 塼室墓, , , 무령왕릉, 武寧王陵, 송산리 6호분, 宋山里 6號墳, 교촌리 3호분, 校村里 3號墳, 중국 남조 양, 中國 南朝 梁, Brick-chamber tomb, Brick, Royal Tomb of King Muryeong, Tomb No. 6 in Songsan-ri, Tomb No. 3 in Gyochon-ri, Liang Dynasty of the Southern Dynasties
백제(百濟) 사비기(泗斐期) 익산(益山) 개발(開發) 시기(時期)와 그 배경(背景)
리병호 ( Lee Byong Ho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5] 제61권 69~105페이지(총37페이지)
익산 지역에서 출토된 백제 사비기 유물 중에는 600년 무왕 즉위 이전으로 편년할 수 있는 자료들이 섞여 있다. 본고는 백제 중앙에서 익산 개발에 착수한 시기를 분석하고, 그 배경이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했다. Ⅱ장에서는 무왕 부부의 무덤으로 알려진 익산 쌍릉에 대해 고분 구조의 변천과 더불어 木棺을 꾸미는 금동제장식품을 분석했다. 그 결과 능산리형 석실 중 중상총과 능산리 7호분은 6세기말에서 7세기초로 편년되지만 익산 쌍릉은 그 보다 늦은 것으로 보았다. 또 쌍릉 중에서 소왕묘가 먼저 만들어지고 대왕묘가 나중에 축조된 것을 확인했다. 이것은 쌍릉이 641년과 642년에 죽은 무왕 부부의 무덤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대왕묘 출토품의 경우 미륵사지 사리기 보다 늦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어 이곳이 무왕릉일 가능성이 높다. Ⅲ장에서는 익산 왕궁리유적과...
TAG 무왕, 武王, 쌍릉, 雙陵, 왕궁리유적, 王宮里遺蹟, 미륵사지, 彌勒寺址, 제석사지, 帝釋寺址, 선화공주, 善花公主, 관문 항구, 關門 港口, King Mu, Twin Tombs , Ssangneung, Wanggung-ri site, Mireksa Temple site, Jeseoksa Temple site, Princess Seonhwa, Important port of the Kingdom
익산지역(益山地域) 백제유적(百濟遺蹟)의 평기(平基)와 특징(特徵)과 변천(變遷)
박은선 ( Park Eun Seon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5] 제61권 107~146페이지(총40페이지)
백제 사비기 수도였던 부여와 대응되는 익산의 역사적인 성격을 밝히기 위해 익산지역에서 출토된 백제시기 평기와를 집중분석하여 검토하였다. 평기와의 각 속성을 본격적으로 분석하여 검토함으로써 익산지역 백제 유적의 평기와의 성격과 특징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려고 하였다. 또한 이를 토대로 백제 한성기·웅진기·사비기 중앙과 지방지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고, 이를 통해 기와의 변화와 발전에 대하여 짚어 보았다. 먼저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제석사지, 제석사 폐기장, 연동리유적, 저토성산성, 석왕동유적, 신동리유적, 원수리유적 등 익산지역에서 평기와가 출토된 9개 유적의 특징을 검토하였다. 평기와 속성 중 문양, 태토, 와통의 종류, 단철흔의 유무 및 너비, 와도분할, 하단 내면 조정, 단면조정 등의 변화하는 양상을 확인하였다. 이것을 토대로 익산지역 평기와의 특징을...
TAG 평(平)기와, 익산, 益山, 백제, 百濟, 인장, 印章, 기와 제작기법, 製作技法 평기와, Plain roof tiles, Iksan, Baekje, Stamped-roof tiles, Manufacturing techniques of the plain roof tiles
후백제(後百濟) 불교조각(佛敎彫刻)의 대외교섭(對外交涉)
진정환 ( Joung Hwan Jin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5] 제61권 147~175페이지(총29페이지)
892년 甄萱이 건국한 後百濟는 한때 후삼국 중 가장 강대한 군사력을 자랑하였으며,``正開``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후백제였던 만큼 936년 고려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三韓一統을 위한 전쟁을 진행하는 한편, 신라·고려는 물론 中國의 吳越과 後唐 그리고 일본과도 적극적인 외교를 펼쳤다. 본고는 후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복원하는 과정의 일환으로써, 후백제 불교조각이 신라·고려, 그리고 중국 불교조각과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우선, 후백제 佛事의 양상은 어떠하였으며, 어떠한 불상이 조성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후백제 불교조각과 신라 불교조각과의 관계, 태봉과 고려 불교조각과의 영향 여부와 함께 중국 오대 불교조각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후삼국기가 매우 짧은 ...
TAG 후백제, 後百濟, 견훤, 甄萱, 불교조각, 佛敎彫刻, 신라, 新羅, 태봉, 泰封, 고려, 高麗, 오월, 吳越, Later Baekje, Gyeonhwon, Buddhist Sculpture Silla, Taebong, Goryeo, Wuyue
광인천황(光仁天皇)의 즉위과정(卽位過程)
김은숙 ( Eun Sook Kim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2015] 제61권 177~204페이지(총28페이지)
이 연구는 고대 일본의 황통이 天武系에서 天智系로 바뀌게 되는 光仁천황의 즉위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떠하였는지를 살핀 것이다. 광인천황의 즉위과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사료는 정사인『續日本紀』를 비롯하여『公卿補任』,『日本紀略』등이 있는데 그 내용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續日本紀』는 公卿의 합의와 稱德천황의 遺宣으로 순조롭게 광인천황이 즉위하였다고 기술하였다. 그러나『公卿補任』에 인용된 ``本系``와『日本紀略』에 인용된 ``百川傳``에 의하면 공경의 합의도 칭덕천황의 유선도 없었다. ``本系``에서는 공경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藤原朝臣百川이 藤原朝臣永手, 藤原朝臣良繼 등과 계책을 세워 光仁천황을 즉위시켰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百川傳``에서는 文室眞人淨三과 大市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吉備朝臣眞備에 맞서서 藤原朝臣百川, 藤原朝臣永手, 藤原朝臣良繼 등이 칭덕천황의 遺宣을...
TAG 광인천황, 光仁天皇, 백벽왕, 白壁王, 칭덕천황, 稱德天皇, 공경회의, 公卿會議, 유선, 遺宣, 등원조신백천, 藤原朝臣百川, 길비조신진비, 吉備朝臣眞備, 공신가전, 功臣家傳, 백천전, 百川傳, 본계, 本系, 續日本紀, 공경보임, 公卿補任, 일본기략, 日本紀略, Konin Tenno, Tenji Tenno branch, Shokunihonki, Tenmu Tenno branch, Kugyobunin, Nihonkiryaku, Momogawaden, 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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